[학교단상-노영필]엄마들의 학교청소
[학교단상-노영필]엄마들의 학교청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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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광주 운남중 교사]
얼마 전, 아폴로 눈병이 기승을 부릴 때 짬을 내 아이의 학교를 찾아갔다. 하교시간을 맞추지 못해 아이를 만나지 못한 채 교실로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랬다. 응당 아이들이 남아 서 해야 할 청소를 선생님들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잡무가 많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온 터라 소문과 다르지 않게 청소까지 손수 하시다니, 선생님들의 근무환경은 듣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너희들은 교실청소를 선생님이 하시니?" 했더니 아이의 대답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아빠, 선생님들이 아니고 우리 반 엄마들인데요."라는 것이었다.

'교실청소' 알고 보니 아이 엄마가

아뿔싸!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귀한 아이들이 힘에 버거워 청소도중 혹시 다칠 새라, 엄마들은 귀가하는 아이들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일까. 이미 오래된 학교 풍속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창피하기까지 했다. 아이 걱정에 내친 김에 청소까지 한다는 부모정성을 말이다. 그런데 머릿속은 엉뚱한 쪽으로 생각이 튀었다.

그렇다. 교실청소를 부모들이 하는 것이야말로 합법적으로(?) 교실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아닌가 말이다. 순수한 도우미 엄마들을 너무 불순하게만 바라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급 반장에다 대의원 엄마들의 요란스런 학교출입을 누가 손가락질하겠는가. 선생님들의 근무환경을 생각하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어 일손을 덜었으면 한다는 일본속담처럼 상황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쩜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문제를 삼는다면 의붓아버지 같은 심보가 될 것 같아 반대할 수가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내 어릴 적엔 고학년 언니 오빠가 와서 교실청소를 해주었다. 생각하면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 때 우리는 고학년이 되면 우리도 당연히 동생들을 위해 해주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아이들끼리의 협동심과 후배사랑의 땀을 어머님들이 빼앗은 것일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들이.

요즘 아이들을 생각하면 멍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초등학교 땐 애지중지 다칠 새라 과보호로 길들여진 탓에 사람 대하는 태도가 너무 제멋 대로다. 출입문에서 아이와 맞닥뜨릴 때 선생님이건 어른이건 밀치고 아이가 먼저 들어간다.

이렇게 길들여진 아이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어떤 인성을 갖출 것인가는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잘 못된 일을 하다 발견이라도 되면 날 잡으라는 듯이 도망가기 바쁘다. 그냥 숨을 수 있으면 도망치면 그만이다.

학부모역할 살아나는 학습프로그램을

부모와 함께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나 학교 청소를 전담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획기적인 발상일까. 부모가 내 자식 공부 잘 시켜달라고 매달리는 청소가 아니라 학교에서 일정하게 부모의 활동공간이 제공되고 그러면서 하는 청소였다면 더 좋을 것이다.

최근 들어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예산을 잘 운용해 학부모회의 교내활동을 지원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그런 사례가 커지면 청소에 매달리는 부모들이 아니라 학교교육을 살리는 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실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배움의 공동체를 엮어갈 수 있는 어머니들의 역할은 내 아이가 있는 교실청소의 봉사활동처럼 학교 안팎의 봉사활동으로 이어지는 통로구실을 하면서 삶의 공동체로 엮어내는 것이 아닐까.

학교 문이 낮아지고 학부모들의 역할이 살아나는 학습프로그램이 생겨날 때 스승의 날 반짝 벌어지는 일회성 초빙교사가 아니라 지역의 전문가로 초대되어 학교를 다양한 색깔로 채색해 주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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