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닷컴] 지방신문의 독자는 경찰뿐?
[기자닷컴] 지방신문의 독자는 경찰뿐?
  • 이광재 기자
  • 승인 2002.09.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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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신문엔 독자투고란이 있다. 삶의 현장 곳곳에서 묻어나는 독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지면에 실어 신문과 독자간의 소통을 실현하는 지면이다. 인터넷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지역 일간신문의 독자투고란과 인터넷게시판을 들여다보면 독자투고를 하는 독자들이 특정 직종에 집중돼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경찰이다. 일부 신문에선 투고자 이름 뒤에 직업 대신 주소지만 적거나 인터넷게시판에서 퍼왔다고 간단히 표기하기도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 글을 찾아보면 영락없이 000경찰서·파출소 꼬리표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반면 일반시민들의 독자투고는 가뭄에 콩 나는 정도다.

물론, 경찰의 독자투고가 잘못은 아니다. 이들이 써 올리는 글의 주제는 교통질서강조나 신용카드 사용시 유의할 점, 환절기 건강지키는 방법 등 대개 공익성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투고의 절대다수가 경찰이라는 특수직종에 몰려있는 것을 보면 '지방신문의 독자는 경찰 뿐일까'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 지방지 독자투고란을 채운 경찰관들의 글

투고 권장하는 경찰

이 지역 경찰들이 독자투고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뭘까. 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찰 관련 시책을 시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독자투고를 권장하고 있으며 자체 지침규정에 따라 각 경찰서별로 독자투고 우수자를 선정해 매월 지방청장 표창이 주어진다고 한다. 특히 전국일간지에 4회 이상 실리게 되면 경찰청장상도 받을 수 있단다. 표창은 곧 인사고과 반영을 의미한다.

이렇게 경찰들이 쏘아 올린 독자투고는 신문을 제작하는 입장에선 당혹스럽기도 하다. 이들은 '당첨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글을 각 신문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동시에 올리곤 한다. 한 지역신문사 독자투고 담당자는 이를 두고 '풍요속의 빈곤'이라도 표현한다. 게시판에서 퍼올 글은 많은데, 다른 신문들과 겹치지 않게 선택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3일자 무등일보와 전남일보 두 신문이 '남북 스포츠용어의 통일'과 '복권열풍 우려'라는 두 꼭지의 독자투고를 똑같이 실었던 것도 이같은 상황이 낳은 결과다.

두 신문에 같은 내용 투고 실리기도


문어발식 독자투고의 밑바탕엔 차별성이 없는 지방신문의 고민이 깔려 있다.

전국 일간신문의 경우 독자들의 기고성향은 그 신문의 편집방향과 대개 일치한다. 신문마다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측면에서 이 지역 신문들의 독자투고는 적지않게 경찰제복의 푸른빛 일색이다. 투고하는 독자층이 '어느 신문이든 상관 없다'고 본다는 의미다. 이는 다시 지역신문들의 편집이 다르지 않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기 색깔을 갖지 못하는 지역 신문들은 결국 "광주전남지역에 신문이 많은 것에 대해 무조건 지적하는데, 내용의 다양성이 담보됐을 때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던 한 언론학자의 말을 다시금 무색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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