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를 죽인 음란한 사고
'죽어도 좋아'를 죽인 음란한 사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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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게는 한국 근대사회의 변화와 함께, 넓게는 인류가 문명의 발전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사상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자 하는 세력과 일정한 틀 내로 그 표현의 영역을 묶어두려는 세력간의 지난한 싸움은 '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왔다. 물론, 표현의 영역을 통제하려는 세력의 의도는 당대의 감성과 생각을 그 시대에 순응하는 인간형으로 주조하고자 함이다.

공식적인 검열 기구가 사라졌다고 하는 한국사회에 검열 논쟁을 일으킨 사건은 200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예술 영화의 세계적 축제인 칸영화제의 비평가 주간에도 초청되었던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제한상영' 등급 판정을 받은 것에서 시작한다.

계속되는 검열논쟁

지난 7월과 8월의 초심과 재심에서 두 번 모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등급 판정을 받은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극영화로 70대 노부부의 사랑과 성,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죽어도 좋아>는 오로지 젊은 삭신과 와인이 곁들어진 섹스만이 바람직하고 아름답다는 고착된 생각을 크게 한 번 건들면서 성 담론의 변방에 놓여있었던 노년의 성과 쾌락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을 높이 살 만 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점잖게 죽음을 맞아야 할(?) 노인들의 구강성교 장면과 성기의 노출이 '일반인의 보편적 정서'와 맞지 않다는, 그네들의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판단'을 이유로 '제한상영' 등급을 매겼다고 한다.
이에 맞서는 자들은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특정 부위가 노출되는 부분 묘사만 문제삼아 제한 상영 등급을 내리는 것은 등급분류가 통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전체 맥락상 18세 관람가 등급을 줘도 좋다'며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관람자의 볼 권리를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그들만의 상직 혹은 보편

왜냐하면, 문제가 된 '제한상영' 등급은 지난 해 헌법재판소가 '장면을 삭제하거나 등급보류를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로 등장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제한 상영관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그것은 상영불가 판정이며 검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 여름 한 동안 영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논쟁인 만큼 선선한 기운이 도는 이 계절에도 <죽어도 좋아>를 소개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로 아직도 후끈거리고 있다.
'추하다, 노골적이다, 곱게 늙어라'는 공격에서부터 '섹스가 젊은이들의 전유물은 아니며' 노인들에게 섹스는 '살아있음의 확인'이라는 극을 달하는 각각의 입장의 공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기준으로 삼은 '일반인의 보편적 정서' 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서'에 위배라는 말이 음란과 동의어로 쓰인다면, 음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다.
'나의 은밀한 쾌락을 자극하고 충족시켜 나는 좋은데,' '남들이 보기에...'가 상식적인 수준의 음란의 기준이라 생각한다. 주관적이고 애매 모호하지만 예리한 칼날과 같은 음란이라는 말은 어느 시대이건 권력을 쥔 자의 무자비한 무기가 된 것이다.

성인영화 전용관 설치를 기대하며

<죽어도 좋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노인의 성행위나 성기 노출 자체가 음란해서라기 보다는 그들의 성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규정짓는 사회 문화적 잣대들이 음란한 것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죽어도 좋아>가 그 음란한 사고에 정면 도전장을 던지는 것 같아 통쾌하다.

어떤 논쟁이건 찬성과 반대로 시작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먼저, 기존의 등급에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거나, 현재의 전체가, 12세, 15세, 18세, 제한 상영의 등급체계에 새로운 등급을 신설하는 것이다.

참고로 1990년부터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NC-17 (No Children Under 17, 17 살과 17 살 이하는 볼 수 없다) 와 같이 과도한 섹스나 폭력을 다룬 영화에 제한 등급을 부여하거나 별도의 상영관에서 상영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 해 문화관광부가 제출하였으나 보류된 상태로 남아있는 '성인영화 전용관'의 설치 논쟁이 여론화되어 음란한 사고와 음란한 판정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지길 나는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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