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중생 억울한 죽음에
두 여중생 억울한 죽음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살인 만행 규탄 서명전을 벌인지 3번째 되던 지난 토요일.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살인 만행 규탄 서명전을 계속 관심과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으로 보고계시던 분식점 아저씨는 뒷정리를 하며 다음주에도 분식집 앞 보도를 점령해도 되겠냐고 질문하는 우리들에게 '그런것은 걱정도 말고 가게 안에 시원한 물 있으니 원없이 들어와 먹으란다.'

말뿐이 아니라 아저씨는 이미 주스와 물을 계속 가져다 주셨었다. 그러면서 혹시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 큰 목소리로 '서명 꼭 합시다'라고 우리 대신 외치기도 하셨다.

분식집 손님이 그냥 갈라치면 먹었으면 꼭 서명해야한다고, 혹은 먹기전에 서명부터 하라고 반협박까지 덧붙였다. 가끔은 답답하신지 오셔서 왜 여기서만 하냐며 학교 앞에서도 하고, 교회앞에서도 하라며 동네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알려주신다. 아저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선생님께 들었다'며 이 사건을 이야기해서 알았단다.

손님 갈라치면 "서명하고 가야지"
여중생 사망 사건 접한 아들의 분노, 자랑스러워


아들이 쉽게 진정하지 못하고 격분해했었는데 아저씨 역시 그 아들의 분노가 오히려 자랑스러웠단다. 그리곤 답답함만 가지고 계셨는데 이제 겨우 서명하신거라고 하셨다.

지난주 일요일 1차 서명전에서 서명을 했던 한 아저씨를 수요일 또 만났다.
계속 가던 길 가지 못하고 선전물 앞에서 오가는 아저씨가 드디어 말문을 트셨다. 아저씨는 그 사건현장까지 돌았다고 하신다. 물론 일때문에 올라간 출장길이었지만 그 덕에 미군부대들이 들어찬 그 근방을 쭈욱 돌았고 사건현장까지 직접 가시게 되었단다.

그리고, 미군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금방 아시게 되었단다. 뭔가 더 이야기 하고 싶어하시는 아저씨랑 한 30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는 한때 카톨릭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하셨단다.

지나가던 시민, "다음에는 선전물 만들어서 참여"
억울한 여중생의 죽음에 시민들 서명 줄이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시는 아저씨에게 이자리에 직접 서서 시민들과 이야기 하시라 말씀 드렸더니 다음주부터 하시겠단다. 뒤돌아 가시면서 우리 선전물을 가리키며 아저씨도 뭔가 준비해오시겠다고 하셨다. 혹여 오늘 또 다음 서명전에서 그 아저씨를 뵙지 못한다 하더라도 난 그 아저씨를 믿는다.

어쩜 2년전 내 모습일지 모른다. 2년전의 나도 아마 서명대 근처를 오락가락 하며 돕지 못해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거다. 서명대 근처를 오락가락 하는 20대로 보이는 한 총각(?)이 있었다. 선전물도 보고 또 보고 우리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가에 들어가 한명씩 끌고 나와 서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참 지나 그 총각아저씨 눈에 모금함이 들어왔는지 '이게 뭐냐고' 물었다. '투쟁기금을 모금하는 함이고 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얼마 뒤 3명의 아저씨들이 우르르 서명한다고 오셔서 그 모금함에 2천원씩 넣는 것이었다. 그 총각아저씨의 숨은 '교육'덕이 아닌가 싶다. 이번주에도 이 세 아저씨들을 또 볼 수 있을까.

※필자가 활동하는 반미여성회 광주지부에서는 매주 수, 토요일 효순, 미선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살인 만행 규탄 서명운동'을 운암동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