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이 아니라 아저씨는 이미 주스와 물을 계속 가져다 주셨었다. 그러면서 혹시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 큰 목소리로 '서명 꼭 합시다'라고 우리 대신 외치기도 하셨다.
분식집 손님이 그냥 갈라치면 먹었으면 꼭 서명해야한다고, 혹은 먹기전에 서명부터 하라고 반협박까지 덧붙였다. 가끔은 답답하신지 오셔서 왜 여기서만 하냐며 학교 앞에서도 하고, 교회앞에서도 하라며 동네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알려주신다. 아저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선생님께 들었다'며 이 사건을 이야기해서 알았단다.
손님 갈라치면 "서명하고 가야지"
여중생 사망 사건 접한 아들의 분노, 자랑스러워
아들이 쉽게 진정하지 못하고 격분해했었는데 아저씨 역시 그 아들의 분노가 오히려 자랑스러웠단다. 그리곤 답답함만 가지고 계셨는데 이제 겨우 서명하신거라고 하셨다.
지난주 일요일 1차 서명전에서 서명을 했던 한 아저씨를 수요일 또 만났다.
계속 가던 길 가지 못하고 선전물 앞에서 오가는 아저씨가 드디어 말문을 트셨다. 아저씨는 그 사건현장까지 돌았다고 하신다. 물론 일때문에 올라간 출장길이었지만 그 덕에 미군부대들이 들어찬 그 근방을 쭈욱 돌았고 사건현장까지 직접 가시게 되었단다.
그리고, 미군들의 말이 거짓이라고 금방 아시게 되었단다. 뭔가 더 이야기 하고 싶어하시는 아저씨랑 한 30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는 한때 카톨릭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하셨단다.
지나가던 시민, "다음에는 선전물 만들어서 참여"
억울한 여중생의 죽음에 시민들 서명 줄이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시는 아저씨에게 이자리에 직접 서서 시민들과 이야기 하시라 말씀 드렸더니 다음주부터 하시겠단다. 뒤돌아 가시면서 우리 선전물을 가리키며 아저씨도 뭔가 준비해오시겠다고 하셨다. 혹여 오늘 또 다음 서명전에서 그 아저씨를 뵙지 못한다 하더라도 난 그 아저씨를 믿는다.
어쩜 2년전 내 모습일지 모른다. 2년전의 나도 아마 서명대 근처를 오락가락 하며 돕지 못해 안타까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거다. 서명대 근처를 오락가락 하는 20대로 보이는 한 총각(?)이 있었다. 선전물도 보고 또 보고 우리 이야기를 듣고 또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가에 들어가 한명씩 끌고 나와 서명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참 지나 그 총각아저씨 눈에 모금함이 들어왔는지 '이게 뭐냐고' 물었다. '투쟁기금을 모금하는 함이고 이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바로 얼마 뒤 3명의 아저씨들이 우르르 서명한다고 오셔서 그 모금함에 2천원씩 넣는 것이었다. 그 총각아저씨의 숨은 '교육'덕이 아닌가 싶다. 이번주에도 이 세 아저씨들을 또 볼 수 있을까.
※필자가 활동하는 반미여성회 광주지부에서는 매주 수, 토요일 효순, 미선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미군에 의한 여중생 살인 만행 규탄 서명운동'을 운암동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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