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임진왜란 흔적]-강항(2회)
[일본의 임진왜란 흔적]-강항(2회)
  • 김세곤 여행칼럼니스트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4.05.30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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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0일 오전, 오즈시(大洲市) 시민회관에서 일본 측 참가자 100여명과 함께 ‘강항 선생 국제 학술 세미나’를 마친 한국 측 참가자 30여 명은 야와타하마 시(八幡浜市)에 있는 금산(金山) 출석사(出石寺)를 답사했다. 출석사는 오즈 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 629m의 산 위에 있는 절이다.

먼저 강항이 쓴 『간양록』의 관련 부분을 읽어보자.

“ o 금산(金山) 출석사(出石寺)에 호인(好仁)이란 중이 있었는데 그는 문필이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o 금산 출석사는 이예주 남쪽 30리에 있다. 중이 하나 있는데 그는 비전주(肥前州)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벼슬을 하여 직위가 탄정(彈正)에 이르렀고, 우리나라 서울에 와 본 일이 있으며, 자못 문자(文字)를 해독하였다. 그는 은퇴하여 절 아래 전토(田土)를 얻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항 지음 · 이을호 옮김, 간양록, 서해문집, 2005, p 23, p 203)”

버스를 타고 절 입구에 도착하니 홍법대사(弘法大師)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홍법대사(774 ~ 835)는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로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이다. 774년에 시코쿠(四国) 사누키국[讚岐國:지금 가가와현]에서 태어난 그는 18세 때 교토의 대학에 입학하여 오카다 등에게 『상서(尙書)』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등 유교 경전과 사서를 배웠다.
20세 때 출가하였고, 24세 때는 『삼교지귀(三敎指歸)』라는 책을 저술하여 일찍이 배운 유교와 불교·도교를 비교하고 불교의 우수성을 강조하였다. 30세 무렵에는 당나라로 건너가 청룡사의 혜과(惠果)를 만났다. 귀국 후 진언종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62세에 입적하였다.

홍법대사 동상

절에 들어가니 국가지정문화재(공예품)인 동종(銅鐘)이 걸려 있다.
이 종은 임진왜란 때 도도 다카도라가 약탈해간 고려의 종이다.
임진왜란은 문화재 약탈 전쟁이고 조선인을 포로로 데려간 노예전쟁이었다.

그런데 나가하마 마치(長浜町) 교육위원회의 설명문에는 ‘동종에 대한 크기나 형태와 조선 고려왕조 시대에 제작된 종’이라는 설명만 있고, 이 종이 어떻게 출석사에 걸려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사진 2 고려 동종
고려 동종

이윽고 사찰 여기저기를 둘러본 다음에 일행은 주지 스님을 만났다. 주지 스님은 친절하게도 강항과 만난 호인 스님 신위를 보여주며 제를 올려 주었다. 호인 스님 신위에는 ‘5세 쾌경법인(快慶法印)’이라고 적혀 있다. 일행은 숙연하게 묵념을 드렸다. 그리고 보시를 하였다. 필자도 강항 선생을 기리면서 보시를 하였다.

법인 스님의 명복을 비는 주지스님
 법인 신위

한편 강항은 호인 스님과 만나 자주 어울렸다. 호인은 우리의 사정을 가엾이 여겨 언제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강항 지음 · 이을호 옮김, 간양록, p 23)

어느 날 호인은 은근히 강항에게 시(詩) 한 수를 청하였다. 자기 부채에 기념으로 써 달라는 것이었다. 강항은 부채에다 시(詩) 한 수를 써주었다.

해동이 여기든가 천리 밖 아득한 곳

바람 편에 보내는 소식 아는가 모르는가.

봉성의 옛터의 소식은 아득하고

꿈도 물결에 싸여 가도오도 못하네.

두 눈을 씻고 보라 일월이 아득거냐

한 마음 기러기 뜻을 사귄 지 오래다.

강남에 꾀꼬리 울고 꽃은 피어 만발 한 곳

날랜 배를 타면 돌아와 그대에게 묵으리

이러자 호인은 물끄러미 들여다 보더니 고개를 끄덕 거렸다.

“알겠소, 알겠어! 그러나 배도 없고 붙잡혀 있으니 어떡하오.”

(강항 지음 · 이을호 옮김, 간양록, p 203-204)

그런데 이 7언율시는 오즈시 시민회관 앞에 세워진 ‘홍유 강항 현창비(鴻儒 姜沆顯彰碑)’ 뒷면에 적혀 있다.

“근세 일본 사상사에 큰 영향을 끼친 유학자 강항이 이예(伊豫)에 있으면서 쓴 7언율시. ... 글씨는 오즈 시장이 썼다.”

홍유 강항 현창비 뒷면(시민회관 앞)

한편 오즈시 사람들의 강항 기리는 정신은 참으로 놀랍다. 오즈시 초등학교 사회과목 부교재에는 ‘조선 선비 강항’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강항이 임진왜란 때 포로로 오즈 성에 압송되어 왔으며, 그때 유학을 가르쳐 일본 유학의 근본이 되었다”고 적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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