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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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 앞에서는 언제나 무릎을 꿇은 채 공손히 앉아 있어야 해요. 신문 읽느라 바쁘신 '그 분'을 위해 걸래질을 하고 커피 나르고, 또 매일 시장을 보는 것은 저의 중요한 업무랍니다. 강하신 '그 분'이 옷을 벗으라 하면 벗을 수 밖에 없는 '약한' 저는 '암탉이 울면 집구석 망한다'를 생활신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치챘겠지만 위 글의 화자는 '여성'이며 '그 분'은 남성을 의미한다. 일간지에 개제되는 4컷 만화와 만평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모습을 압축해서 표현해 본 것이다.

걸래질 하고, 커피 나르고…일간지 만평 속 여성 "부정적"

시사 만화를 연구해온 김진수 씨(시사만화평론가)의 "시사만화 속 여성의 모습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남성은 센사람, 약한 사람은 여성으로 표현되며 여성의 역할도 수동적인 가정주부로 한정되어 그려진다."는 말처럼 시사만화 속 여성은 수동적, 소극적, 감정적 존재이다.

반면 남성은 적극적, 진취적, 논리적이며 강하게 표현된다. 시사만화가 사회 현실과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코드라고 본다면, 시사 만화속에서 규정된 여성의 역할을 살펴보는 것은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다.

"왜 은행 창구에는 여자만 근무하는지 모르겠다. 단순 계산 작업은 여자가, 중요한 사무 업무는 남자가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배어 있는 것 같다."는 박미옥 씨(31 중흥동). 그녀의 말처럼 은행 창구에서 수납 업무를 담당하는 남자 직원을 찾기는 어렵다. 이에 광주은행 인사과는 "손님들에게 밝은 인상을 주어야 하고 또 창구직업이 특성상 빠른 손놀림을 요하기 때문에 여성직원을 많이 채용한다."고 전한다.

밝은 인상, 섬세함이 '여성'만의 특성이라. 권혁범 교수(대전대)는 월간 '행복한 매일'에서 여성의 섬세함에 대한 의견을 적은 바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 언뜻 보면 여성에 대한 치하 같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은 '통이 큰 일' '거친 일'은 못한다는, 따라서 그것은 당연히 남자의 몫이라는 이분법적 분업의 구도를 암시하는 말이다."

"섬세함" 강조는 '통큰' 사회적 역할 남성 독점하려는 것
"가부장적 정체성 고뇌없는 성평등은 모래위에 성쌓는 격"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라는 인식이 배어있는 이러한 '구조물'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건재'하고 있다.
'여성의 결혼관과 정조관념의 해이로 외도하는 여성 급증, 이는 가정파괴의 주요인?' 지난 5일 한 지방 일간지가 모전화상담소 상담내용을 보도한 논조이다. 내용의 사실 확인은 나중으로 치더라도, 조선시대나 썼을 법한 '정조관념'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만으로도 이 보도에 스며있는 여성역할인식 수준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성공한 여성을 인터뷰 했을때 흔히 쓰이는 낯설지 않은 문구, "집에서는 엄마, 아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주부랍니다."
권혁범 교수는 "이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진출하더라도 '고유' 업무인 가사노동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제하는 메세지"라고 분석한다. 물론 양육과 가사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매체도 남성에게 '가사노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한다. 남녀평등법도 제정되고, 여성의 권리와 역할도 확대되었다 한다. 일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매년 3만명의 여태아가 죽어가고, 여아대비 남아출생율 또한 세계 1위를 달린다.
여대생 취업은 여전히 사회적 문제이고, '정치'는 여전히 '남성'만의 '잔치'일 뿐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에게 법적, 제도적 장치의 변화보다 앞서 달라져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속에 무의식, 또는 의도적으로 자리잡은 '가부장적 인식, 남성중심 의식'이라는 당연한 원칙을 상기시켜 준다.

의식의 변화에 기초하지 않는 제도 변화는 결코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한국인의 가부장적 정체성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뇌하지 않고서는 성평등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와 인권 찾기는 모래위에 성쌓기"라는 권 교수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전해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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