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생리대가 아니어야
부끄러운 생리대가 아니어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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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추석을 앞둔 바닷가의 장날은 붐볐다. 온갖 생생한 생선부터 꾸덕꾸덕 말린 생선까지 선보였거, 할매들이 잔뜩 앉아서 나물 등을 팔고 있었다. 한 포기에 4천원하는 배추를 샀다. 손으로 들어보고 무겁고 속이 꽉 차고, 겉잎 색이 진한 녹색이고 속은 노랗게 익은 것으로 골랐다. '태풍이 오기전에는 한 포기에 천원했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농협 연쇄점으로 생리대를 사러 갔다.

배추를 살 때와는 달리, 좋은 생리대를 고를 수 있는 기준이 아무것도 없었다. TV광고가 가장 인상적인 것, 날개부분이 있는 것, 사이즈가 나뉘어있는 것 정도였다. 이 정도의 지식으로는 거의 눈을 감고 사는 것과 같다. 장을 많이 본 것도 부담이 되고 해서 가장 저렴한 것으로 고르고 나왔지만, 생리대값이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평생의 1/8을 생리를 한다는 데 말이다.

예전 어머니세대에는 아기들처럼 천기저귀를 썼고, 그것을 삶고 빨고 다시 썼다는 사실, TV에 광고가 처음 나오던 시절 배우가 "남성분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했다는 사실을 가정선생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연쇄점서 생리대를 고르며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들에게 쉬쉬하며 강당에 몰래 모인 여학생들이 처음 들은 성교육. 선생님께서 "혹시 이 중에 생리하는 사람?" 하고 물으니, 우리 학교에서 가장 덩치 큰 아이가 혼자서 쑥스럽게 손을 들자, 다들 웅성웅성거렸다. 그 때의 거부감을 기억한다.

6학년 처음 생리를 시작하던 날, 아버지께서 써주신 "우리 아이의 첫 월경 때문에 체육시간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남자담임선생님께 드려야 했던 당혹스러운 일, 생리대를 꺼내 화장실로 갈 때 어떻게 몰래 가지고 가야하는지 난감한 일 (그 방법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운동장청소 시간에 몰래 가지고 나온 생리대가 땅에 떨어졌을 때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고개를 돌리 던 일, 남학생들이 주운 생리대로 솜을 뜯어 보이며 장난치던 일 등은 나에게 생리대 혹은 월경이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추억이다.

최근 생리대와 관련된 관심이 퍼지고 있다. 생리대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벌이는 서명 사이트도 인기다. 요즘 여성들의 당당한 자기 주장과 새로운 인식은 얼마나 올바른가. 여성의 몸을 사랑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지 못한 어두운 나의 기억들은 훨훨 던져 버리고 싶다.

내 몸을 사랑하자

월경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몸은 여신의 몸이라고 했던 어느 강연도 인상적이었다. 생리대는 생활필수품이라는 사실, 그래서 생리대가 비싼 이유는 부가가치세 때문인데 이것을 면세해야 한다는 사실. 왜 이렇게 늦었을까, 이런 당당한 권리찾기가 왜 이렇게 늦어서 어두운 사춘기, 부끄러운 사춘기를 보내게 했을까.

그 대신 우리 딸 아이의 첫 월경 때는 아이아빠와 축하를 하고, 브래지어며 생리대를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먼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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