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치기 아버지
벌치기 아버지
  • 문틈 시인
  • 승인 2024.04.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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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자 꿀벌들이 바빠졌다. 벌들은 꿀을 물어 나르느라 밭에 파종하는 사람보다 더 바쁘다. 만년에 아버지는 벌치기를 하셨다. 덕택에 나는 꿀을 자주 먹고 지냈다. 요새는 꿀값이 비싼데다 당분 섭취를 자제하는 터라 꿀을 먹는 일이 드물다.

사람들은 토종꿀을 엄지척하는데 나는 토종꿀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토종꿀이 양봉꿀보다 비싸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물을 서양 사람이 떠오면 값이 싸고, 조선 사람이 떠오면 값이 비싸다는 논리라는 말씀이다.

여기 벚꽃이 피어 있다. 같은 밀원에서 꿀을 따다가 저장하는데 그 성분이 다를 것이 무엇일까. 다만 토종벌은 밀원을 따라 옮겨 다니는 일반벌(서양벌)과는 달리 한 곳에 붙박이로 있어 주변 야생화의 꿀들도 모아온다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1년에 한 번 꿀을 따는 것도 다르고. 토종벌은 밀원이 다양하다. 우스갯말로 산삼꿀도 물어온다는 식으로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반벌은 이른바 토종벌과 공존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주변에 일반벌이 토종벌보다 수효가 많으면 토종벌은 멸종당한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토종벌이 서양벌보다 수효가 더 많을 때는 평화가 공존한다. 지역에 따라 벌들까지도 이렇게도 성격이 달라지는 것일까. 어딘지 모르게 한국인의 품성과 닮아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는 남미에서 이주해온 벌들 때문에 양봉업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남미 벌들은 미국 꿀벌들을 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물어 죽이기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런 외세가 쳐들어와 꿀벌을 도륙을 내는 일은 없다.

서양벌은 이미 이 땅에 정착해서 많이 순해진 탓인가 싶다. 그러나 꿀벌의 진짜 천적은 말벌이다. 말벌들 때문에 양봉을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말벌들은 꿀벌 사냥에 나서면 말벌 한 마리가 벌통 하나의 꿀벌들을 모두 요절을 낼 수 있다. 공포의 조스 같은 존재다. 아버지도 말벌 때문에 양봉을 망치다시피 한 적이 있다.

대개 시골에 가면 민가의 지붕 처마에 말벌집들이 늘어져 있다. 이 벌들이 꿀벌을 목표로 삼고 돌진해오면 막을 도리가 없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말벌집을 없애버려야 한다. 말벌은 벌통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벌통 문을 들락거리는 꿀벌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 왜 그러는지 모른다.

남미의 안데스산맥 고원 지역 같은 데서는 벌들이 꿀을 모으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춘의 나라에서는 언제나 사시사철 밖에 나가면 꿀을 따 먹을 수 있으므로 굳이 꿀을 저장해 놓고 먹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참 팔자 좋은 벌들이다.

어떻게 보면 벌들도 그런 나라에 태어나면 한국에 태어난 것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꿀을 저장해 놓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그러나 벌치기로부터 그 꿀을 빼앗기고 마는, 이 나라 벌들보다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사람도 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 어느 집안에 태어났느냐가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다시피 한다. 속된 말로 운이 일생을 결정한다고 할까. 불공평하다면 참 불공평한 세상이다. 어디에 태어나느냐는 자신의 노력이나 선택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벼랑에 피어난 꽃이라고 해서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어디에서 태어났건 주어진 조건을 헤치고 생명을 꽃피운다면 훌륭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남과 비교해서 불행하다고 판단한다면 죽을 때까지 불행할 것이고.

벌치기는 3월 초 제주도에서 유채꿀을 따고, 4, 5월에는 목포 인근의 지역에서 벚꽃과 아카시아, 가을에는 잠깐 충청도나 경상도를 거쳐 강원도에서 밤나무꿀을 딴다. 밀원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닌다. 밀원이 좋을 때는 벌들이 쉴 새 없이 꿀을 물어 나르는 바람에 거의 날마다 채밀해야 한다.

벌들은 죽을 둥 살 둥 꿀을 물어 나르느라 온 힘을 다한다. 아버지와 같은 벌치기는 벌들의 노고를 훔쳐내 꿀을 따로 저장한다. 그러면 벌들은 도둑맞은 꿀을 채워 넣기 위해 또 꿀을 물어 나르고. 아버지는 만년에 이런 벌치기로 생계를 유지하셨다. “꿀벌들은 나를 지켜 주는 군대다.” 수십만 마리의 꿀벌 사령관이셨던 아버지가 생각나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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