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영글어 가는 삶
그래도 영글어 가는 삶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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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전 불어닥친 태풍 '로사'는 나주배 농가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모진 바람에 수확을 코 앞에 두고 있던 배들은 마치 추풍 낙엽처럼 땅바닥으로 나뒹굴어여 했다.


나주 송촌동 한 농가에서 만난 주인아저씨는 열명이 동원됐는데도 줍는데만 일주일 넘게 걸릴거라며 떨어진 배들을 치울 엄두가 안난단고 한숨부터 쉰다.
한 농부가 한 입 베어 보이며 맛이 들었으니 먹어보라며 배를 내민다. 그러나 망연자실한 농부의 얼굴을 마주보기조차 민망해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파괴돼 널부러진 집채의 잔해와 흘러내린 흙더미들. 생활의 필수조건이던 전기와 식수까지 끊기는 등 전남도 내 피해액만 해도 3천억원이 넘는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으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지만 가을을 느낄 새가 없다. '로사'가 할퀴간 곳 어디든 도심이든 농촌이든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몸짓으로 부산하기만 하다.


'위대'한 자연의 힘만큼 인간의 생명력 또한 강인하다. 오랜 장마에 썩어들어가는 농산물을 다듬는 주름투성이 손길과 광주 북구 건국동 한 마을에서의 쓰러진 벼를 베는 촌부의 바쁜 몸놀림을 보며 그 안에서 또다른 '삶'이 영글어 가고 있음을 보았다. 먹구름을 밀어내는 태양만큼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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