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가족붕괴 등식은 시대착오"
"호주제 폐지=가족붕괴 등식은 시대착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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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김혜진 씨(33 ·월곡동)는 현재 여덟살짜리 여자와 '동거'중이다. 법적으로 그렇다. 여덟살짜리 여자는 김씨의 딸이지만 '호주제'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아이를 호적에 올릴 수 없다. 만약 김씨가 재혼을 한다면, 김씨의 가족은 아빠성, 엄마성, 아이성이 따로 따로 존재하게 된다. 또 자신이 낳은 아이는 입양아가 된다.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어도 여성인 저는 '호주'가 아니기에 아이에 대한 아무런 권한을 가질 수 없어요. 그냥 동거인일 뿐이죠. 아이가 7세전이라면 성을 바꿀 수 있다는데 그것도 전남편 동의를 얻어야 가능해요."

이혼시 여성이 아이 키워도 호주는 전남편
3살짜리 손자가 60살 할머니 호주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의식 뿌리깊은 호주제


호주제의 문제는 이렇듯 부부가 이혼했을 경우 극명하게 나타난다. 광주지.고법에 따르면 올해 광주지역 이혼사례는 지난 2월 300건에서 8월에는 470건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이혼가족, 홀부모 가족 등이 늘고 있다는 사실로 해석 가능하다.

그런데 가정의 권한을 모두 남성에게 부여하고 있는 호주제 때문에 김씨와 같은 피해 사례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광주전남여성단체 연합 박효숙 대표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호주제는 이혼 여성에게만 이중, 삼중의 고통을 주는 남녀불평등 법"이라며 "현재 30%가 이혼가정이다. 현실조건에 맞지 않는 호주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호주제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호주제는 한마디로 남성이 가족의 대를 잇도록 정한 제도이다. 남성만이 호주로 인정되기 때문에 3살짜리 손자가 60살 할머니의 호주가 되는 웃지 못할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부계혈통만을 인정하는 이 법이 '아들이 최고다'라는 아들선호, 남성중심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한 몫 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여성단체측은 '호주제'라는 법 하나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남성에 따라 결정되는 '어이없는' 일이 2002년,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지적한다.

부부 미혼자녀 중심 '기본가족별 편제방식'도입 제시
13일, '평등가족 만들기 순회 캠페인' 서명운동 등 예정


호주제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지난 99년 UN 인권이사회는 호주제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호주제는 여성을 종속적인 역할로 위치 짓는 가부장적 사회를 반영, 강화시킨다. 이 규약에 명시된 모든 권리를 남녀가 평등하게 향유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지 못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호주제 위헌 여부 심의중이다.

반면 유림측은 여전히 "호주제 폐지 결사 반대" 입장이다. 성균관 이상만 씨(총무처)는 "호주제는 법적 기능을 상실한 명목상 제도이다. 그것마저 없으면 가부장적 전통이 파괴되고 가족제도 자체가 붕괴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호주제 폐지 운동본부'측은 '호주'를 없애고 부부와 미혼자녀로 가족관계를 기록하는 '기본가족별 편제방식'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호주제 폐지가 가족 붕괴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

한편 여성단체연합은 오는 13일 '호주제 폐지, 평등가족 만들기 전국 순회 캠페인'을 광주 이프유 후문 무대에서 펼치며 호주제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 국회 청원 활동 등을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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