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축구공이 사랑한 선수
[투데이오늘]축구공이 사랑한 선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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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담[소설가. 단편 '깃발' 외 다수]

잭 런던의 소설 중에 미래사회의 인류가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20세기 인간들은 운동경기를 즐겼는데 가장 격렬한 경기가 권투였대."
"어떤 경기인데?"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가 한쪽이 쓰러지면 다른 한쪽이 승자가 되는 셈이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패자를 보면서 인간들이 환호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게나."
"그런 야만적인 시대도 있었단 말인가."

야만적인 시대는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면면히 이어져왔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장중한 건축물과 예술품을 인류에게 남긴 로마도 예외가 아니다. 원형 경기장의 피비린내가 지금도 진동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체력단련 이외의 어떤 운동도 혐오한다. 그러나 월드컵으로 온 민족이 들끓으니 나라고 외면할 수 있었겠는가.

처음엔 선수들의 포지션이 보이다가 광장으로 몰려나온 붉은 악마의 붉은 물결이 보였다. 개개인으로 흩어졌던 인터넷 세대가 공동으로 이루어내는 의지가 어떠한 것인가를 스스로 각성했을 것이고 각성의 에너지는 4강의 신화를 성취했다.

경기가 막바지에 치달으면서 나의 시야엔 축구공이 하나의 생명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축구공은 필사적이었고 어떤 공은 욕망스러웠고 또는 경직되어 골 밖으로 튕겨져나가기도 했다.

분노로 팽팽해진 공은 선수를 다치게도 했고 승부에 집착한 공은 어쨌거나 골인을 했으나 시원스럽지가 않았다. 같은 공이라도 선수의 성품에 따라 변환되는 것이 마술 보는 것 같았다.

드디어 조화로운 공을 발견했다. 그 공은 선수 ―호나우두―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선수의 발걸음은 춤을 추듯 경쾌하고 마치 연인을 다루듯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공과 일체감이 되었다.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인데도 선수를 사랑해서 공이 스스로 골인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뛰는 경기는 태클이 별로 없고 피를 흘리는 필사적인 움직임도 없다. 골인이 되면 검지손가락을 살짝 흔들 뿐 필요 이상으로 환호하는 세레모니는 없다. 골인이 안 되어도 안타까운 미소를 지을 뿐 평상심은 한결같다.

그는 승부욕으로 축구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자국민의 승부욕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는 있을 것이다. 생전 처음 미소 지으면서 본 운동경기였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마치 고도의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듯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그 분위기가 경기장 너머 세계 곳곳에 퍼져서 서로가 일체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세계평화에 일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월드컵이 조금이라도 평화에 기여를 하지 않는다면 진보한 미래사회의 인류들에게 야만의 시대라고 평가받을까 염려스럽다.

/홍희담(소설가, 단편 '깃발' 외 다수)

투데이오늘 필진

◇김정길(사회운동가. 광주전남연합 상임의장)
◇문병란(본지 발행인. 시인. 전 조선대 교수)
◇박성수(전남대 경영학부교수. 경제학박사)
◇이민원(광주전남 자치연대 대표. 광주대 e비지니스학부 교수)
◇정병준(언론노련 사무처장. KBS광주방송총국 부장대우)
◇홍희담(소설가. 단편 깃발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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