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의 돌잔치
둘째 딸의 돌잔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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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작년 금강산에서 '남북농민통일대회'에 참여했다가 평양시 농촌근로자동맹 일꾼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딸이 둘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 "동무도 재주가 없슴다!" 하며 웃었다고 한다. 북쪽도 아들을 선호한다니 닮은꼴은 닮은 꼴인 모양이다.

돌상 차릴 돈 북녘 어린이 돕기 모금에

둘째도 큰아이와 같이 딸을 낳고, 돌잔치를 준비했다. 딸 돌잔치는 소박하게 하거나 안하고 넘어가는 일이 아직은 더 흔한데, 나는 정성껏 둘째 딸아이의 첫 돌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더운 날 집에서 낑낑거리지 말라는 배려로 읍내에 있는 뷔폐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화장도 못하고, 하루종일 일하는 동네 형님들이 모처럼 붉은 입술도 칠하고, 화사한 옷들을 맞춰입고 축하해 주러나왔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어딜가도 표가 난다고 그래도 새카만 얼굴들과 투박한 손들은 모두 우리동네 사람들이었다.

돌잔치를 준비하면서 남은 수익금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겠다고 하자 한 언니는 "이 집은 돌잔치에 사람들한테 돈을 받는다는거야, 아님 모금함을 설치하겠다는 거야? "하며 투덜거렸다.

"돌잔치 때는 그냥 축하만 해주고 아이의 건강을 빌어주는게 더 좋지 않을까. 이미 그자리에 갈 사람 거진 반이상은 통일쌀도 냈을것이고 여러모로 한창 어려운 사람들 아니겠니? 물론 내라고 한다면 반강제적으로라도 내줄수는 있겠지만 그럼 속마음은 별로 좋지도 않고, 그 자리가 조금은 부담도 되겠다 싶은 노파심이 드네. 많은 음식이 없어도 돌떡이나 푸짐히 나누어 먹으며,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해 주는것이 진정한 돌잔치가 아닐까.

우리 아이야 타이트한 엄마덕에 제대로 백일이며 돌이며 챙겨 먹지도 못했지만......백일상 차릴 돈으로 어느 어려운 사람에게 후원금 냈고, 돌상 차릴돈에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로 부터 받은 뜻밖의 선물을 모아 북녁어린이 돕기 모금에 냈지!

거창한 돌상 대신 호주제 폐지 운동에 후원을

거창한 백일상이나 돌상 앞에서 거하게 찍은 사진 한장 없어도 자신으로 인해 쬐끔이라도 기뻤을 이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흐뭇해지지 않을까 싶어. 잔치란 것은 초대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찾아와 축하해주고,또 그렇게 저렇게 온 이들이 부담없이 웃고 덕담 듬뿍해주고 가는 그런 자리란 생각이 들었어."

나는 평소에 우리식구들을 아껴주고, 잘 챙겨주시는 분들에게 직접 하나하나 초대장을 만들어 보냈다. 진심으로 그 분들에게 크게 한턱 쏘고 싶었다. 그리고, 이 험난한 세상에 우리 두 딸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십시오,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식당앞에는 그런 우리 부부의 마음을 소자보에 적어서 붙여놓았고, 남편이 마이크를 잡고 한말씀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수익금으로는 통일에 도움이 되는 곳과 여성을 위한 호주제 폐지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에 후원을 하였다.

두 딸이 자라서 살아갈 세상은 분단과 전쟁의 공포와 편견이 없는 곳, 여남차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곳, 농촌과 도시의 격차가 없는 곳에서 자신의 의식대로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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