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어렵다고요? 정을 나누면 돼요
노동운동이 어렵다고요? 정을 나누면 돼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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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에 미혼인 그녀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마흔 살에서 쉰 살은 족히 넘는다. 내가 아이가 둘이라면, 기본급 40여 만원으로 가정을 꾸려야 할 처지라면, 잔업에 연장근무를 해도 '아저씨'보다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 '아줌마'라면... 여린 손가락에 박혀가는 굳은 살 숫자만큼씩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일터의 모순을 그녀들은 일찍 배워간다.

엽서 한장 냉냉한 일터 분위기 온기로 바꿔

"50명, 100명이 안 되는 중소 사업장 대부분의 노동자는 '아줌마'들이예요. 하지만 '아줌마' 노동자들이 많을수록 노동 조건은 열악하죠."
부속 레일을 만드는 S사에서 일하는 김혜정 씨(27)와 노소윤 씨(27)가 '아가씨'의 몸으로 노조활동에 뛰어든 이유이다.
혹여나 '찍힐까 봐' 아파도 내색 한 번 못하고 야근과 잔업에 시달리며, 권리도 제대로 못 찾는 아줌마들의 노동 현실은 두 아가씨를 열성 노조원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그녀들이 이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는 노조도 설립되지 않은 상황. 무엇보다 놀란 것은 '경쟁'과 '질시'가 만연한 노동자들의 관계였다.
"사실 노동 현장은 생존의 싸움터예요. 최소 기본급만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관리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또 그런 문제로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죠."

지난해 기름때 뭍은 손 맞잡고 노조설립

노조 설립의 문제보다도 서로를 아끼는 사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였다. 그래서 혜정씨와 소윤씨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 매주 70-80시간의 노동에 지쳐있던 노동자 한 분, 한 분에게 마음을 담은 엽서를 썼다. 그런데 어찌보면 하찮은(?) 이 정성이 사내 분위기를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감동하신 아줌마들이 몇 달 뒤 '발렌타인 데이'때 아저씨 노동자들에게 선물을 했어요. 그러자 또 '화이트 데이'때는 아저씨 노동자들이 답례를 하고요"

'기름때' 나누는 현장 사람들의 제일 큰 힘은 서로의 '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 기뻤다는 노소윤 씨. 그렇게 쌓인 정을 바탕으로 드디어 2001년 3월에 노조를 만들게 되었다. 그 뒤로 아줌마 노동자들의 그녀들을 보는 눈길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아가씨'를 보기 드문 중소기업 노동 현장에서 그녀들이 이상하게 비춰질 수 밖에 없었을 터.

"노동현장 숨은 주역 기혼여성노동자들 어깨펴는 세상 왔으면... "

'화장실 신문'은 아줌마 노동자들 곁으로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그녀들의 노력중의 하나였다. "사실 현장 노동자들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가 전부예요" 라는 김혜정씨는 노동자들의 연애 소식 등 소소한 일상을 담은 소식지를 화장실에 부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소식지는 현재 사내 최고 열독율을 자랑하는 인기 절정의 신문이다. 내용도 한층 깊어져 이제 '여중생 사망사건'과 같은 시사 문제를 신문에 담기도 한다.

"아줌마 노동자들은 스스로 위축되는 것이 많아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이유로 자기 활동을 위축시키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 해도 현장 여성노동자들의 삶의 변화는 거의 없다. 아직도 임금에서 남성과 현격한 차이가 나고, 단지 '아줌마'라는 이유로 비상식적인 노동착취를 당하기도 한다.

"우리 아줌마들이 튼튼해져야 여성노동환경이 변할 것" 외로운 '잔업거부' 투쟁을 하다 해고당한 한 아줌마 노동자의 이 충고는 혜정, 소윤씨의 발걸음에 무게를 더한다.

'내일 또 내가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에 생활정보지 구인란을 매일 들여다보며 하루를 마감한다는 아줌마 노동자들의 현실. 아직 '아가씨'인 그녀들이 '아줌마'로 사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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