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희망은 어디서 찾을까
농민들의 희망은 어디서 찾을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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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앙칼지게 쏟아지던 1월 중순에 호박파종을 했다. 그 다음에는 하루에 서너 번씩 비닐하우스 덮개를 열어주고 닫아주고 보온덮개를 덮었다 갰다 반복하면서 냉해라도 입을까 노심초사 60일 동안 모종을 키웠다. 아이들이 저절로 커주지 않는 것처럼 절반의 농사라는 모종농사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안달복달하면서 키운 모종을 본 밭에 심고 비닐터널을 씌웠다.

터널비닐을 씌운 날부터 터널비닐을 벗기는 시기까지 (30-50일) 남부지방은 바람이 잦아서 터널비닐이 벗겨지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또 터널이 벗겨져서 심어놓은 모종이 냉해라도 입을까봐(서리피해라도 입는 날에는 회생불능일 수 있기 때문) 발 뻗고 잔다는 것이 사치로 여겨진다.

그 다음에 만상(마지막서리)이 지나면 터널비닐 안에서 호박순을 꺼내서 유인작업을 해 주고 아들덩굴과 손자덩굴이 나오면 필요한 덩굴만 남기고 나머지 덩굴을 잘라주는 일을 25일 가량 해 준다. 그 중간에 물도 주고 웃거름도 해줘야 하고 터널비늘을 씌울 때 박았던 활죽도 뽑아내고 비닐도 걷어내야 한다. 그리고 고랑에 짚을 깔아줘야 한다.

덩굴제거 작업을 하면서 새벽5시-10시까지는 호박수정을 해줬다. 호박수정 기간이 20-30일 되는데 그 기간 안에 비가 오면 그날 핀 호박꽃은 호박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또 걱정이 만들어진다.

호박하나 키우기가 쉬운가?

또 설령 수정이 잘되어서 착과가 되었다 하더라도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칼슘을 비롯한 여러 가지 미량요소를 관주해줘야 했다.작년에 부족했던 점 보완해보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고 하면서, 올해는 농사 자체만으로는 성공했다 싶게 때깔 좋은(상품성 있는) 호박이 발에 채일 정도로 데굴데굴 달려서 익었다.

올해는 정말이지 빚 좀 갚아보는구나 하면서 우리 부부는 누적된 피로를 달랬다. 1월중순부터 7월말까지(수확기) 쌓인 피로를 며칠만 더 버티면 수확이다 하면서 밭에서 뒹굴었다. 몸살이 났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를 뺀 나머지 170일 정도를 온통 밭에서 뒹군 셈이다.

©photoup.com

그래서 나온 결과가 헛수고 했다는 것이었다. 수확해서 생산비를 계산하고 나니 억울함만 덩그러니 남았다. 정말 그랬다. 너무 억울해서 눈물도 말라버린 허탈감이 연체이자 위에 앉아 있었다. 농사꾼은 여름에 바빠야 겨울에 볼일 있다는 말, 그 말을 만들어낸 사람한테 줘버리고 싶다. 신의 노여움을 사서 목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그렇게 규정된 운명으로 살아가라는 우롱 같아서이다.

고추농사는 또 어떠한가. 2월 초순에 파종해서 90일 동안 날마다 여닫기를 해야 하고 보온덮개도 걷고 덮기를 해줘야 한다. 모종기간이 가장 길기도 하기만 정식해서 수확까지의 과정이 어떤 작물보다도 손이 많이 간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 땡볕에서 딴 고추를 말려서 선별한 고추를 시장에 내놓는다.

그 고추 시세가 예년의 절반 시세라고 한다. 차라리 땅을 놀려뒀더라면 애쓴 것은 고사하고 비용이라도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자책들을 하고 있다. 누가 어떤 작물을 가꾸어서 재미를 봤다는 소식은 도대체 언제였던가 싶게 아득하다. 식량작물을 외국에 뺏기고 난 다음에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작물로 몰려다니면서 겪게 되는 농민들의 현실이다.


정치인들만 모르는 농민이 살 길


그런 와중에 얼마 전에는, 한,중 마늘협상에서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제한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해놓고 2년 동안이나 400만 농민을 속여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농민을 비롯해서 몸뚱이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들숨날숨이 불규칙해서 언제 숨이 끊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정치꾼들은 민생과는 무관한 당리당략 싸움하느라 날 새는 줄 모르고 침만 튀기고 있다. 정녕 농민들에게는 미래도 희망도 없어서인가?

아니다. 농민들이 살 길, 빛은 분명 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것이 통일농업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자기 뱃속에 기름기 채우느라 눈이 먼 정치모리배들만 모를 뿐이다.

다 죽어가는 농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전망만 그려진다면 다시 일어나 신명나게, 뼈가 녹아지도록 흙을 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샘을 파는 법. 통일만이 살길이 열리는 사람들 스스로가 그 모양새를 만들어가야 하리라고 본다.

교회의 전도사처럼, 우리 농민들은 통일과 통일농업을 노래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일농업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봐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 농민이 살길임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리 강조하고 반복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막힌 생활과 삶에 희망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보자. 정말로 호미를 쥔 손에 절로 신명이 나리라.통일이 된 세상에서, 농민으로서의 내 삶을 바로 지금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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