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양말의 사내를 그리워하며
분홍양말의 사내를 그리워하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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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다른 면으로 보아주세요.”라던지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면 안되나요?”를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적 통념을 습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시작은 태아때부터가 아닐까! 부지불식간에 그 습득된 통념들은 자신을 제어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일이 다반사다.

나는 여섯 살난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다. 가부장적인 농촌에서 사내아이를 자유롭게 키우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유롭게’를 표방하며 고정관념깨기를 시도한 바 있다.

사내아이가 다섯 살이 되자 치마입기를 갈망했었다. 하지만 난 과감히 치마를 사주기보다는 엄마의 긴 치마를 접어 올려 입혀주는 소심함(?)으로 첫 번째 고정관념깨기는 반쯤 실패하였다. 그 치마는 집안에서만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는 정말 그때 너무너무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로운 욕구의 실현도 유치원이라는 사회적관계를 가지면서 무너지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깨지는 자유로운 욕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웃옷에는 만화주인공들이 그려져있다. 그중에서도 여자주인공이 가장 크게 새겨져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입으려고 떼를 써 빨래하기가 곤욕이었는데, 유치원을 다니고 단 3개월만에 아이는 사회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엄마 나 이옷 안입어. 노란색은 여자꺼래. 그리고 여기 여자그림도 있잖아. 이거 여자꺼야.“색이 여자꺼 남자꺼가 어디있어.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입으면 되는거야.”
“싫어, 그거 여자꺼라고 친구들이 놀린단말야.” 친구들이 놀린다는 말에 나는 맥없이 옷을 놓았고 아이는 두 번 다시 그옷을 입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노오란 옷을....

이제 여섯 살이 된 사내아이는 오늘 유치원에 갈 옷을 입으며 또한번 실랑이를 한다. 봄빛이 하도 고와 고른 연두빛, 분홍빛 줄무늬의 각각 양말 한 켤레. 그중 오늘 아침 분홍빛 양말을 꺼내 신키며 아이는 또다시 거부한다. “그거 신으며 여자색이라고 놀린다니까.......
..”
나는 또다시 아이들의 이른 고정관념속에 넋을 놓는다.

학습되는 남녀 편가르기

옛날 과거에 급제하고 입었던 앵삼이란 옷은 앵무새색 단경에 깃 등을 달았다 한다. 앵무새색을 상상해보라. 더구나 황색은 황제의 색이라 해서 감히(?) 입을 수 있는 색도 아니었다.

옛 왕들이 거의 남자들이고보면 황색이 그 어디에도 여자만의 색이라는 규정은 없다. 또한 남자 아이들의 돌복은 남색고름단 연분홍저고리에 연보라 풍차바지를 입고 초록색 마고자를 입는 것이었다.

그 연분홍빛과 연보라빛이 얼마나 고왔을까! 상상해보라. 한편 서양의 로코코시대 남자들은 개더(홑주름)를 단 옷을 입거나 프릴과 레이스, 리본까지 달아 입었다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누가 이처럼 남자, 여자의 구분을 색상에까지 그어놓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너댓살 아이들이 이미 구분짓기 시작하는 모든 영역의 남녀가르기는 과연 누구로부터 학습된 것일까.
‘다양하게 생각하기’, ‘창의력 키우기’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이전에 어른들이 먼저 습득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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