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만 떠났을 뿐, 꿈은 이루어진다
몸만 떠났을 뿐, 꿈은 이루어진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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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간종양이 무엇인줄 잘 안다. 인생은 어차피 누구나 한정되어 있다. 풍물실, 체육실, 운동장, 연못의 우렁이, 뒷밭의 콩들, 그리고 피붙이 같은 아이들…. 모두가 나를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지난 여름 필요 없는 나무를 베어버린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아이들 앞에 다시 서고 싶다…"

분명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이토록 간절히 바랐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눈감아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폐교 위기에 처했던 학교를 전국 최고 '아름다운 학교'로 탈바꿈 시켰던 광주동초등학교 충효분교 문관식 교사가 지난 4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간암이라는 병마와 싸운 지 15개월 만의 일이다.

양복을 입은 그의 영정이 낯설다. 지난해 충효분교에서 만났던 그는 작업복 차림이었다. "문선생님은 양복 입을 시간이 없어요. 학교 곳곳 고칠 게 많다며 쉴 새 없이 돌아다니시거든요" 주위 교사들의 이같은 귀뜸이 오히려 칭찬으로 들려왔던 기억이 머리를 스친다.

그는 학교에서 수업하는 시간보다 운동장의 큰 돌멩이 치우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때론 딱딱한 교과서를 내 던지고 학생들과 밖으로 나가 매미 소리에 귀기울인 적도 있었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과 교사들이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는 곳이다"라며 35명의 학생들이 숨쉬는 작은학교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손발을 움직이던 그의 모습은 학부모들까지 감동시킬 정도였다.

이와 함께 '한끼 정도 굶어보기, 연필 한자루로 공부하기, 용돈 없이 견뎌보기, 차타지 않고 걸어보기, 겨울내의 입지 않기'. 부족함을 느껴야 가진 것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던 그는 항상 '결핍교육'을 강조하곤 했다. 이는 그의 교단생활 32년동안 절대 변하지 않았던 교육철학이었다.

'학교는 아이들의 천국'...한평생 교정에 바친 스승
충효분교 문관식 선생님의 아름다운 이별


아이들에게 '부족함'을 가르쳤지만 그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항상 풍요로웠다. "교사는 첫째도, 둘째도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던 그는 스스로 목소리 높여 교사의 권리를 외치지 않았고 스승을 존경하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은 스승이었다.

'선생님 너무 너무 보고 싶어요', '병이 빨리 나으셔서 우리 운동장에서 함께 달리기해요', '선생님 빨리 오셔서 자전거 타는 법 가르쳐 주세요'. 암과 싸우는 동안 충효분교 아이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e메일을 보내고 이젠 의젓한 대학생이 된 제자들이 병문안을 와 며칠씩 간호해주는 것을 보며 문교사는 그동안 제자들 가슴에 심어두었던 '작은 보람'에서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사제간의 사랑을 질투하기라도 한 듯 병세가 악화되면서 문교사는 지난해 9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정성스레 마련한 명예퇴임식장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는 '선생님 이제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꼭 건강하세요'라는 학생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와 함께 울려퍼진 '스승의 은혜' 노래를 가슴에 담았다.

이들은 무더웠던 어느 여름날, 장례식장에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아이들의 천국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가 충효분교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갔음을 믿는다.
아직 '할일이 많다'던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다 이루지 못했던 꿈을 남겼다. 학생과 교사는 없고 지식만이 난무한 곳이 아닌, 사람이 존재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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