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언론 왜곡된 성 담론 반복
지역 언론 왜곡된 성 담론 반복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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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살. 광주 소재 여 중·고 수석 졸업, 넉넉한 가정 환경. 유학비 마련 위해 성매매 가담'
지난 20일 인터넷 성매매 사건으로 입건된 최 모씨의 ‘이력사항'이다. 언론이 그녀를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성매매'는 우리 사회에서 뉴스감이 될 만한 '사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최 모씨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유는 여성에 대한 우리 언론, 우리 사회의 이중적 시각 때문이다.

'여고 수석졸업생 유학비 벌기 위해 인터넷 윤락', '유학비 마련 인터넷 윤락'. 이번 사건을 다뤘던 지역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여기에는 여성 문제를 바라보는 언론의 남성주의적 성인식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윤락'이라는 용어는 성을 파는 여성에게만 책임을 묻는 성에 대한 왜곡된 관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이를 '성매매'로 고쳐 부르고 있음에도 언론은 여전히 '윤락'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여성연구소 강현아 연구위원은 "매춘여성에게는 온갖 개인적인 비난을 서슴치 않는 반면, 매매춘 남성에게는 면죄부를 부여하는 언론의 이중적 태도는 변하지 않고 있다"면서 "언론이 왜곡된 성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건 뒷 이야기를 보도하는 언론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뉴스를 접한 한 재미교포가 최 여성에게 유학비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최씨 또한 '유학길에 오르고 싶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를 두고 지역 일간지 k신문은 '최 여성이 어렵지 않은 가정형편'임에도 재미교포의 유학비 지원을 받아들였다'며 '최 여성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갈춘기 씨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우리 언론,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언론 보도 행태"라고 말했다.

< 부유한 집 고학력 엘리트 여성만 부각
도덕적 비난 대신 매매춘 선택강요
사회구조 주목 개선방안 관심을


언론이 주목한 이번 사건의 핵심은 '여고 수석 졸업생'이 '유학비 마련 위해' 성매매를 했다는 것이다. 매매춘 문제는 언론에게는 이미 식상한 소재로 관심 밖 이야기지만 이번과 같이 '선정적 요소'가 가미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엘리트 여성이 유학비 벌기 위해 매춘을?' 이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언론의 시각은 매우 위험하다. '고학력 여성, 부유한 집안' 등 선정적 코드가 부각된 언론 보도는 문제의 본질을 은폐할 뿐 아니라, 왜곡된 '성' 인식구조를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한 언론은 이번 일을 "인터넷 윤락이 평범한 여성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 보도했다. '어렵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한 똑똑한 여성'의 성매매 사실이 '우리 사회 여성들의 성도덕 문란'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확장되어 버리는 순간이다.

언론의 남성적, 이중적인 성에 대한 태도가 문제시되는 다른 이유는 그런 태도가 여성의 현실을 눈가림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강현아 위원은 "여성 개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초점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유학비용을 마련키 위해 매춘을 선택하게끔 여성을 내모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번 사건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이 사회속 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금방 드러난다.
31살의 대학을 졸업한 '괜찮은' 인재가 안정적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유학을 선택했고 비용 마련을 위해 매춘을 하게 된 사연. 만약 최 씨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남자라면 31살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 성매매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을까.

3년 간의 취직 전쟁 후 29살의 나이로 취직에 성공한 임은경 씨는 "출발선상에서부터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뒤쳐져 있었다"며 우리 사회 현실은 여성과 남성이 공평한 조건에서 능력으로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지적에 대해 '오버'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전자업계에 근무하는 김 모씨는 "성매매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 문제는 다른 것"이라며 이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신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매춘 여성은 있는데 매매춘 남성은 없는 것이다. 이번 성매매 사건의 '다리 역할'을 했던 남성, 화대를 지불하지 않았던 남성 등 문제 소지가 충분히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한 지식인이 우리 사회는 여성과 남성이 아닌 불리하게 태어나는 자, 유리하게 태어나는 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풍자한 적이 있다. 21세기 언론은, 그리고 사회는 여전히 여성을 '불리하게 태어나는 자'로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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