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희망의 조건
[투데이오늘]희망의 조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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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방송기자가 '글'을 쓴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방송'이라는 격자틀 속에서 일하며 생긴, '못다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렇게 쌓인 내 얘기를 풀어내고 싶은 바램이 앞서, 'today 오늘' 필진이 되어 달라는 '시민의 소리' 제안을 사양하지 못했다.

'today 오늘'을 맡은 필진 6명 가운데 가장 젊다. 젊은 필진에게 적합한 주제가 무엇일까. 나는 첫 주제를 '희망'으로 정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이 순간 광주에서, '이것이 희망이다' 라고 내놓을만한 그 '무엇'을 쉽게 찾지 못한다.

봄날의 신록이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희망을 노래하기엔 현실이 다급하다. 식견이 부족한 탓일까, 금남로를 뒤덮은 '붉은악마'를 쉽게 '희망'으로 연결 할 순 없었다. 한순간의 집단최면이라고까지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흥겨운 축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아무래도 섣부르다.

이 땅을 지배하는 가진 자들에게 희망을 기대할 수는 더욱 없다. 가진 자들은 결코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놓을 상황에 몰릴 때만, 타협을 위해 변화할 뿐이다. 87년 6.29가 그랬고, 오늘 광주에서 민주당이 그렇다. 시민의 공복이라는 공무원들도 새로 뽑힌 단체장 밑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희망이라고 내세울 그 무엇을 찾아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공동체의 정의를 세워, 함께 잘사는 '대동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운동'만이 희망 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운동 또한 현실의 '희망'이지 못하다. 운동의 모태인 시민대중이 운동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당으로부터도, 시민으로부터도 선택받지 못한 광주 북갑후보 공천과정을 뼈아프게 인식해야 한다. 여론조사가 지지도 조사가 아닌 지명도 조사였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그 비판으로도 정해숙후보가 정치 신인 박재규후보보다 뒤떨어진 이유를 설명하진 못한다. 희생을 감내해 온 수 십 년 운동경력이, 단순히 사법시험에 합격했음을 의미하는 변호사 직함보다 더 낮게 평가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하기에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다.

왜 이런가. 그 책임은 시민에게서 멀어져 간 '운동'에 있다. '시민 참여 없는' 시민운동의 기본한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대중)을 향한, 시민(대중)과 함께 하려는 운동의 '의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공사장 사고로 주택 30여 채가 파손됐는데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운동단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놀랍고 어이없다. 마늘 농가들의 고통은 일부 농민단체에만 맡겨졌다. 노동자의 해고는 노동조합의 문제로 한정되어 버렸다. 광주일보의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시위는 담당 노무사 1명의 몫이었다. 정말 그 많던 운동단체는 다 어디에 있는가.

그 많던 운동단체는 다 어디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희망은 없는가.
새 길을 모색하기 위해 나주시장 신정훈을 만났다.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쉽게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시민을 위한 헌신으로 시민의 신뢰를 얻는 일. 이것이 지금 운동이 가야 할 길이다.

'처음처럼'. 80년대를 살아 온 사람들은 그 엄혹한 시절에도 희망을 일군 다짐들을 기억한다. 대중과 함께 하기. 헌신을 위한 자기 각성. 이런 다짐들을 다시 이끌어 내야 한다. 운동이 철저히 하방(下方)해야 한다.
운동의 '하방'을 실천하는 단초로 '운동 이력 안 쓰기'를 제안하고자 한다. 운동단체의 활동경력이 정치인 이력의 구색맞추기용으로 쓰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풍토로는 '보여주기'와 '내 몫 챙기기'의 덫을 벗어나지 못한다. 운동단체의 명함을 없애버리는 것도 하방의 실천을 다짐하는 일일 수 있다. 언제 명함 들고 운동했던가.

그렇게 '껍데기'는 가고, 정의와 평화를 향한 참 실천만 남아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최우선 조건이다.

/정병준(언론인, 전 언론노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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