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40회]-진주성 순절과 김천일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40회]-진주성 순절과 김천일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7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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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6월 29일은 최후 순국의 날이었다. 황진이 죽자 진주목사 서예원을 순성장으로 삼았다.
그런데 서예원은 겁에 질린 나머지 혼이 빠져 갓을 벗은 채 말을 타고 울면서 돌아다녔다.
최경회가 군사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다고 서예원을 참하려 하다가 그만두고는 장윤에게 대신 순성장을 맡겼다. 장윤은 명망이 황진 다음 가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장윤마저 분전 중에 탄환에 맞아 죽었다.

전남 나주 정렬사 김천일 영정

오후 1~3시경에 왜군이 동문 성벽의 기초 석 몇 개를 뽑아내자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왜적의 무리가 개미 떼처럼 기어올랐고 이어서 서문과 북문도 뚫렸다. 창의사 김천일 부대가 사력을 다했지만 버텨내지 못했다. 드디어 왜적은 성에 올라와 병기를 휘두르니 성벽을 지키던 군사들이 흩어져 촉석루로 들어갔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김천일을 부축해 피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김천일은 꿋꿋이 앉아 움직이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마땅히 여기서 죽겠다”하고 아들 김상건 및 최경회·고종후·양산숙 등과 함께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하고 남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한편 이종인, 이잠, 강희열등 10여명은 장검을 뽑아 들고 왜적과 싸우다 전사했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적이 대대적으로 도륙을 자행했다. 목사 서예원 및 판관 성여해도 죽음을 면하지 못했으며, 여러 장령(將領)들도 다 죽었다. 성안의 백성들도 앞을 다퉈 남강에 투신해 시체가 강을 메웠다. 대략 죽은 자가 6∼7만 명이나 됐고, 성이 온통 폐허가 됐다.

9일간의 진주성 혈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명나라와 관군이 버린 진주성을 호남의병과 몇 지역의 경상도 관군이 사수했지만 버틸 수 없었다.
병력만도 무려 10대 1이었으니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전투였다.
이 싸움은 진흙 속에서 꿈틀거리던 버마재미 한 마리가 수레바퀴를 밀어내려 한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며칠 후 왜군은 촉석루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이때 최경회의 소실 논개는 기생으로 변복해 왜장의 흥을 맞추다가 의암 바위에서 왜장과 함께 남강에 뛰어들었다.

왜군은 비록 진주성 전투에서 이겼지만 당초 목적인 호남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왜군은 진주성 전투의 피로가 겹쳐서 하동, 구례, 순천 등지를 잠시 분탕질하고 경상도로 돌아왔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명나라 유격 오종도는 글을 지어 김천일(1537-1593)을 추모했다.
그런데 서애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김천일을 혹평했다.

“김천일이 데리고 온 군사는 모두 한양 거리에서 모집한 자들이었고, 게다가 김천일 자신도 군사전략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고집대로 하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그는 원래부터 (진주목사) 서예원과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시기하고 명령이 어긋났다.
이러고서야 어찌 패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유성룡 지음·이민수 옮김, 징비록, p 240-241; 류성룡 저·김시덕 역해, 교감·해설 징비록, p 447)

전남 나주 정렬사
 

1593년 6월 1일의 ‘선조수정실록’에도 김천일을 칭송하고 있다.
“적이 10배의 병력으로 계속 들이닥쳤으니 이는 김시민이 당하던 적과는 중과(衆寡)가 현저하게 다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김천일 등은 충의만을 가지고 군사와 백성을 격려했던 것인데 황진·이종인·장윤·김준민 등이 왜적을 살상하면서 9일이 지나서야 힘이 다했으니, 전투 방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때 김천일 등이 아니었더라면 겁 많고 미련한 서예원으로서는 필시 하루 이틀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서예원의 형 서인원이 김천일을 교묘하게 비방하면서 서예원을 신원하려고 했던 까닭에 사대부들 사이에 이론(異論)이 있게 됐고, 심지어는 선조 앞에서 ‘김천일의 뜻은 숭상할 만하나, 재주가 졸렬해 일을 그르쳤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천일이 국사를 그르친 것이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한편 나주시 동신대학교 뒤에는 정렬사(旌烈祠)가 있다. 이곳에는 창의사 김천일과 큰아들 김상건 그리고 참모 양산숙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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