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새의 노래
뻐꾹새의 노래
  • 문틈 시인
  • 승인 2023.05.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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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꽃도 일찍 피었지만 뻐꾹새도 먼저 와 운다. 아직 5월 중순인데 벌써 뻐꾹새 우는 소리가 숲에서 들려온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는 보통 6월 초가 되어서야 뻐꾹새가 울었는데 올해는 자연의 운행질서가 한참 빨라진 모양이다.

뻐꾹새 울음소리를 들을 때면 가슴 안쪽이 싸안해진다. 구슬프다고 할까, 아련하다고 할까, 그런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새들은 우는 소리가 저마다 다르고 사람에게도 듣는 느낌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뻐꾹새 우는 소리는 유독 가슴에 안타까운 여운 같은 것을 남긴다.

우리는 익히 들어서 잘 안다. 뻐꾹새가 우는 이유는 짝을 부르거나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고는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뻐국새들에게 ‘밥 주는 엄마는 네 부모가 아니야, 네 진짜 부모는 여기 있다’고 둥지 근처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것을.

그러나 단지 그것뿐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분명 다른 뜻도 있는 성싶다. 뻐꾹새의 울음은 자연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무슨 메시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이를테면 나는 뻐꾹새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나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이 세상 풍진을 다 씻어내고 뻐꾹새 우는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묘한 느낌. 그 세상은 구슬프지만 고요하고 그윽하고 정겨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그래서 뻐꾹새 우는 소리는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짧은 봄날 같은 인생을 잘 참고 지내라는 그런 의미를 안겨 주는 것 같다.

나 대신 삶의 고달픔을 울어주는 새의 울음소리는 위로의 노래로 들린다. 까치, 꿩이 우짖는 소리들은 아무리 들어도 별 감흥이 없다. 그런데 뻐꾹새는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나를 달래주는 것만 같다. 내 영혼을 감싸안는 노래랄까.

뻐꾹새는 그가 노래하는 소리만으로 충분히 나의 시름을 덜어준다. 만일 봄날에 뻐꾹새 우는 소리가 안 들린다면 세상이 무척 쓸쓸할 것이다. 허전할 것이다. 뻐꾹새가 울면 산골짜기들도 고요히 그 노래를 듣는다고 나는 믿는다.

뻐꾹새는 우는 소리가 매우 특이하다. ‘뻐꾹’ 하고 한 번 울면 곧이어 먼저 소리보다는 조금 작은 소리의 반향이 인다. 먼저 낸 소리의 테두리처럼 한 번 더 물결처럼 파장을 일며 소리가 구비쳐 울리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들어본 새 울음소리 가운데 가장 내 심금에 와 닿는 소리다.

뻐꾹새는 그러니까 생태적으로는 짝과 새끼새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보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뻐꾹새가 개개비나 뱁새 둥지에 탁란을 하고 자기는 노래만 하며 논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실상은 이런 행태는 자연에서는 결코 욕먹을 일이 아니다.

뻐꾹새는 5월에 날아왔다가 고작 3개월 정도만 머물다가 남쪽 나라로 날아가는 철새이다. 석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고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다른 새의 둥지에 염치없이 탁란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뻐꾹새는 먼 바다를 날아오느라 지쳐서 둥지를 지을 힘도 남아 있지 않는 상태다. 새끼가 날게 되면 데리고 다시 먼 바다를 건너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새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택한 이런 뻐꾹새의 생존법을 자연은 너그러이 허용한 것이다.

개개비나 뱁새는 남의 새끼를 길러 날려 보낸 후에 이번에는 다시 진짜로 자기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그러므로 뱁새나 개개비도 따지고 보면 크게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하릴없는 사람들이 뻐꾹새의 암컷 울음소리는 어떻고, 수컷 울음소리는 이렇고들 하는데 나는 그 정도로까지 자연을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직관하고 느끼고 깨달을 뿐이다.

뻐꾹새의 울음소리에는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어떤 소식, 위로, 동정의 뜻도 숨겨져 있다는 내 생각이 너무 먼 것일까. 자연은 냉랭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뻐꾹새의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내게 다가오는 저 손길에 내 손을 뻗으며 나는 자연의 일원임을 새삼 느낀다. 그렇다, 뻐꾹새는 내 영혼의 길손 같은 존재다. 부디 그 애틋한 곡조의 노래를 끊이지 말아다오. 뻐꾹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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