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없는 식사
맛 없는 식사
  • 문틈 시인
  • 승인 2023.05.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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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한테서 이따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며칠 전엔 교회 모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다 고만고만한 나이대의 남편들이 모두 몸이 성치 않다고 했다. 고혈압이 있고, 당뇨가 있고, 어떤 남편은 치아를 고치고, 나이가 들어가니 몸의 여기저기가 고장이 났다는 하소연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가운데 어느 한 남편만 병원에 다니지 않고 몸이 아픈 데가 없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임의 여자들이 그 사람의 아내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60대의 나이에 남편이 어떻게 한 군데도 안 아프고 지낼 수 있는가?

다들 놀라는 가운데 그 답이라 할 만한 것이라면 이것밖에 없었다. 그 남편은 외식을 별로 하지 않는다. 특히 맛집이라고 하는 데는 찾아가 본 적이 거의 없다. 그저 집에서 아내가 만들어주는 식사를 감사하게 먹는다. 그런 이유만으로 남편이 건강하게 지낸다고 하기는 뭣하다.

더 자세히 들어보면, 그 남편은 음식에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맵고, 짜고, 단 음식을 멀리한다. 싱싱한 원래 식재료를 살려 최소한으로 양념을 한 음식을 즐겨 먹는다. 결혼 후 평생 그렇게 먹고 살았다 한다.

하기는 먹는 것이 그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다. '무엇을 먹는지 알려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도 있다.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지나치게 맛을 탐하면 자극적인 음식의 성분에 몸이 안 좋은 반응을 해서 그것이 쌓여 병이 될 수 있다. 건강하게 살려면 싱겁게, 싱싱한 것을 먹어라. 귀아프게 듣는 말이다. 그 남편이 그런 식생활을 해온 것이다.

나는 어느 편이냐 하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남편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잔 고장이 나면 얼른 병원에 가서 고치는 식으로 살아왔다. 살아보니 건강이란 우선 타고난 자질이 기본인 것 같다. 태어나기를 나처럼 약골로 난 사람은 시난고난 그렇게 산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골골한 사람도 오래 산다는 것. 몸을 추스리고 무리하지 않고 매사에 조심스럽게 생활을 한 사람 중에 의외로 오래 사는 사람이 많다. 건강한 사람만이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먹는 것만 가지고는 건강에 관한 답을 낼 수가 없는 것이 변수다. 육체적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다. 투자가 잘못되어서 건강을 상한 사람도 많다. 사업이 망해서 병에 걸린 사람도,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절망에 빠져 건강을 잃은 사람도, 그러고 보면 심리적 여러 변수도 먹는 것 못지않게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의 경우를 든다면 나는 내 몸을 유리그릇처럼 다룬다.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깨질까 봐 살살 다루는 편이다. 지난 3년여 동안 코로나를 피하느라 무척 조심했고, 지금도 그렇다. 규칙적으로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든다.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하지 않느냐고들 한다.

내 대답은 ‘새들이 둥지에 들어오는 저녁 시간’이 만물이 잠드는 시간이고, 그 시간이 나도 잠자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나도 만물 중의 하나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 같은 것에는 이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한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한다. 어찌 보면 재미없는 삶이다.

누군가는 나를 ‘집에 사는 자연인’이라고 하던데 나는 그 말이 싫지 않다. 노자가 말한 무위의 세계까지는 아니지만 세상 일에 휩쓸리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저 지금처럼 한가로운 시간이 좋다. 그런 삶을 즐긴다. 이것을 건강하게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지만.

나는 요 며칠 전에도 병원에 갔었다. 청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모레는 호흡기 문제로 병원에 간다. 이런 식으로 카센터에 가서 차를 고치듯 고장이 나면 고쳐가면서 산다.

아내는 먹는 것에 까탈을 부린다고 내게 불평을 하지만 나도 그 남편처럼 음식에서 별로 조리하지 않은 싱싱한 원재료의 맛을 찾을 뿐이다. 밥은 맛이 없으므로 평생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나는 식탁에서도 인생에서도 맛을 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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