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체벌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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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26일에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이라는 것을 16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냈다. '매질은 10대 이내', '남학생은 엉덩이, 여학생은 허벅지' '지름 1.5cm내외, 60cm이하의 직선형 나무'등이 이 예시안의 핵심 골자인 것처럼 여러 언론사의 사회면을 채웠다. 탁상공론이라고 교사들은 말하고, 학생들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냉소하는 한편으로 실제 고발가능성을 확인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늑대 소년의 거짓말을 보는 것 같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받는다고 하더니' , 이것은 거꾸로다. 약속은 교육인적자원부가 남발하고, 뺨맞기는 오로지 교사들 몫이 될 터이다. 진정 이 땅의 교육을 책임지고, 30여만 교사들의 지휘자로서 교육개혁을 이끌고자 한다면, 교사들이 체벌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터인데, 그저 전시적인 빛깔내기로 교육당국의 생존을 구걸하면서 애끓는 수십만 교사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지휘부라 아니할 수 없다.

체벌과 인권, 두 마리 토끼 잡기


사실 이번 교육부의 조치는 '체벌'과 '인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욕심에서 시작된 듯 하다. 대다수 교사들에게 불신을 산 탁상공론의 체벌불가론을 떨치고서 체벌을 허용하되, 법치주의를 외치면서 인권을 지켜보겠다는 누군가의 고심이 작용했으리라.
그러나 다시금 늑대 소년이 되고마는 교육부의 행태는 이제 와서는 짠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교육부는 시종일관 학교를, 그리고 교사를 교육하는 주체로 생각하기보다 수용소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학생들도 '수용소 탈출' 운운하며, 자신의 학년반번호를 수인번호로 인용하는 낙서를 종종하는 걸 보면 결코 근거가 없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교육부의 해법은 전혀 차원을 달리 한다. '수용소' 운운하며 '인간교육'의 터전이기를 역설적으로 소망하는 대다수 학생, 교사, 학부모의 염원과는 전혀 다르게 교육부는 어차피 수용소라면, 수용소에 적절한 관리규칙을 정비하면 될 것 아닌가? --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가치적 타당성과 상관없이 현실적인 사고는 맹목적으로 환영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김대중 정부가 나라의 백년지대계인 학교정책의 설계에서 치명적 오류를 범하는 이유도 어쩌면 이와 관계가 있으리라. 물론 이번의 경우도 역시나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정책을 입안한 관료는 이리 말하리라. "학교 현장의 정서상 당장 수용하기는 어렵겠지만, 결국 체벌규정은 이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 현실적 아닌가?"라고 말이다.

학교의 변화 : 생활교육의 터전으로


그러나 체벌문제의 진정한 해법은 학교가 '자원'을 키우는 곳이 아닌 '사람'을 키우는 곳으로 변하는 것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이 땅의 교육의 유일논리로 존재하는 한,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한 '생활지도'는 있을지나, 인성교육, 공동체교육을 주목하는 '생활교육'은 결코 불가능하다. 대학진학률이 얼마이며, 몇 명이 일류대에 진학했는지가 교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목표라면, '학교 공간에서 학생들의 삶의 질'에 대해 교사들이 공감하고 합의 할 수 있는 기준이란 영원히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 땅의 교사들은 자신들의 바램과 무관하게 학생들을 학습의 장에 억지로 결박하는 '생활지도'의 천사(?)가 되어버렸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학생의 내면에 어떤 자생력이 생기는지는 안중에 없다. 오로지 결과일뿐.

많은 이들이(학생,학부모) 학교에는 체벌을 '즐겨하는' 교사와 '자제하는' 교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체벌을 '즐겨하는' 교사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다시 '책임져주는' 교사와 '무책임한' 교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이 두가지의 발상은 상호모순을 일으킨다. 그럴 리가 없지만, 적어도 한국의 학교 현실에서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교사를 분류하는 일이 아니다. 교사들이 '생활교육'의 터로서 학교를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학생들의 자치활동이 활성화되고, 학생집단의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집단의 상식으로 자율적인 통제력이 형성되는 것, 그 과정에서 교사의 도우미로서 역할이 자리잡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교육개혁이며, 그때에 비로소 체벌문제도 새롭게 이야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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