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문 열기
두 번째 문 열기
  • 문틈 시인
  • 승인 2023.03.1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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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나오는 유튜브를 가끔 본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온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느라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동정과 함께 응원도 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남한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무슨 자격증을 열 개 넘게 땄다며 자랑(?)을 할 때다.

그 자격증이라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별 쓸모없는 것들이다. 여기서 그 자격증들을 말하기는 뭣하지만 멋모르는 사람들을 홀려 자격증을 남발하는 세태를 그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자격증을 얻느라 생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자격증이 많은 나라도 또 없을 것 같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아무렇지도 않게 아파트 경비로 들어가 일해오던 관행을 바꿔 이제는 경비를 하려면 10만원 넘게 내고 사흘간 교육을 받고 이수증을 얻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려 하면 대부분 자격증을 따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결혼하려면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교육받았다는 자격증을 먼저 따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요새 매스컴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요리 전문가 백 모씨는 한식 요리사 자격증이 없어도 인기를 얻고 돈도 벌고 매스컴을 휩쓸고 있다. 요리하는 데 무슨 자격증이 필요하단 말인가. 어떤 셰프 못지않게 전라도 요리를 잘 하는 우리 어머니도 자격증 같은 것이 없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자격증 만발국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런 식으로 과다하게 얽어매는 사회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힘들어 보여 불만이 있다. 옛날에는 이발소는 머리 깎는 재주만 있으면 이발사가 될 수 있었다. 국가기술자격 상시기능사로 조리사(한식, 양식, 중식, 일식) 자격증, 지게차, 굴착기, 제과, 제빵사, 미용사(일반, 피부, 네일, 메이크업)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도 국가가 시행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다행히 아직 김치 기능사 시험은 없는 것 같다. 이것도 언젠가는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주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이 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격증이 국가에서, 혹은 무슨 협회에서 주는 자격증이 쌔고 쌔다.

이런 식으로 무얼 좀 해보려면 자격증에 막혀 자유롭게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의사, 간호사처럼 사람의 생명을 다루거나 운전처럼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는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격증 만능의 나라에서 어째서 중대한 국사를 다루는 국회의원에겐 자격시험 같은 것이 없는지 모르겠다. 시의원, 도의원, 군수,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들도 일정한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에 한해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나는 지지한다. 선거로 뽑는 공직자들에 대해 자격증 시험을 치르게 하면 어떨까. 그래야 자격증 남발 사회와 균형이 맞다.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요새는 코로나 시국이라서 버스를 피하고 주로 택시를 탄다. 나는 글을 쓰지만 글이란 무슨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든 쓸 수 있다.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의 추천제도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요즘은 그런 제도를 통과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다.

북한은 이웃 동네를 가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남한은 이동의 자유는 있지만 자격증 때문에 다른 의미에서 계층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자격증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우리나라는 음대에서 성악교수를 하는 데도 박사학위가 필요하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강단에 서기 쉽지 않다. 도자기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도예과 교수가 되기 힘들다.

미국은 자기 분야에 실력만 있으면 대학 교수되는 길이 열려 있다. 기업에서 대학 교수로 가는 일이 흔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방신문 기자가 이른바 메이저 신문인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될 수 있다.

자격증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것대로 두되 일가를 이룬 실력 있는 사람에게는 문호를 확 열어 놓아야 한다. 사회라고 하는 진정한 대학, 대학원에서 수십 년 갈고 닦은 장인 실력이 인정받는 두 번째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 기득권의 혁파는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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