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27회] - 부산포 해전 (1)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27회] - 부산포 해전 (1)
  • 시민의소리
  • 승인 2023.02.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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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592년 7월 한산과 안골포 해전에서 크게 패한 일본 수군은 부산 본영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다대진 동헌 전경
다대진 동헌 전경

7월 13일에 전라좌수영 본영(여수)으로 돌아온 이순신은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에 곧바로 왜군의 심장부인 부산 공격 준비를 한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합동훈련을 하자고 전갈을 보냈다. 8월1일부터 전라 좌·우 수군은 전라좌수영 본영에 모여 맹훈련을 하였다. 출전에 앞서 합동훈련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함선도 증강되었다. 전선 74척(거북선 2척 포함)과 협선 92척 모두 166척이었다. 전선은 한산 해전 때의 52척보다 40% 늘어났다. 전선감조군관 나대용의 활약이 컸다.

그런데 합동훈련 중에 이순신은 경상우도 순찰사 김수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육상으로 진군한 왜적들이 낮이면 숨고 밤이면 행군하여 양산 및 김해 강(金海江) 등지로 잇따라 내려오는데, 짐짝을 가득히 실은 것으로 보아 도망치려는 낌새가 현저하다.”

이순신은 부산 섬멸 작전을 결행했다. 작전은 조방장 정걸(丁傑, 1514~1597)이 도맡았다.
정걸은 이순신에게 부산이 지금 적의 소굴이 되어 있는데 여기를 친다면 적을 필시 깨트릴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하였고, 이순신은 그의 말을 따랐다. 이는 『호남절의록』에 나온다.
정걸은 이순신보다 나이가 30살이나 많은 팔순을 바라보는 백발장군이었다.
그는 이미 경상좌수사, 전라좌수사, 전라우수사, 전라병사를 역임한 백전노장 이었다.

8월 24일에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이억기등과 배를 띄워 조방장 정걸과 함께 출전하여 남해땅 관음포에 이르러 밤을 지냈다.

8월 24일의 『난중일기』를 읽어 보자.
“24일 맑다. 객사 동헌에서 조방장 정걸과 아침을 먹고, 곧 침벽정으로 갔다. 우수사(이억기)와 점심을 먹었는데 정 조방장도 함께 했다. 오후 4시쯤 배를 출발시켰다. 노질을 재촉해 노량 뒷 바다에 닻을 내렸다. 자정에 다시 달빛을 타고 배를 움직여 사천 모사랑포에 이르렀다. (후략)”

전라좌우수군은 8월 25일 사량도에서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하였고, 당포에서 하룻밤을 잤다. 26일은 거제도 앞바다에서, 27일에는 원포(창원시 진해구 원포동)에서 밤을 지냈고, 28일에는 가덕도에서 잤다.

8월 29일 조선함대는 가덕도를 출발하여 양산, 김해 앞바다에 도착하였는데, 동래 땅 장림포 앞바다에 왜적 300명이 큰 배 4척과 작은 배 2척에 나누어 타고 양산으로부터 나오다가 우리 군사를 보고는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하였다. 경상우수사 원균이 그들을 깨트리고 불태웠다.

이후 조선 연합함대는 군사를 좌우로 나누어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였지만 강 폭이 좁아서 판옥선이 들어가서 싸울 수 없기에,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에 가덕도 북쪽으로 돌아와서 밤새워 원균, 이억기 등과 작전을 상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순신은 “부산은 적의 근거지가 되었으니 그 소굴을 없애버려야만 적의 간담을 꺾을 수가 있을 것이다”하여 이번 작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밝혔다.

9월 1일 첫닭이 울자 연합함대는 부산포로 향하였다. 아침 8시경 몰운대(歿運臺)를 지날 무렵에 갑자기 동풍이 일고 파도가 거세어 배를 부리기가 어려웠다.
이순신은 간신히 배를 저어 몰운대를 돌기 직전, 화준구미에서 왜군의 대선 5척을 만나 모두 분멸했다. 다대포(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앞바다에 이르러서는 왜선 8척을 만나 역시 분멸하고, 점점 동쪽으로 이동하여 다대포 옆의 서평포(부산시 사하구 구평동)에서 9척을 만나 모두 분멸했다.

이어서 부산포 앞에 위치한 절영도(부산시 영도)에서 왜선 2척을 만났는데 모두 기슭에 줄지어 정박하여 있었다. 연합함대는 왜적의 배들을 남김없이 격파하였다.

이어서 연합함대는 절영도 안팎을 샅샅이 뒤졌으나 왜적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작은 배를 부산 앞바다로 급히 보내어 왜적의 배들을 탐망하게 하였더니 ‘약 500여 척의 배들이 선창 동쪽 산기슭 언덕 아래 줄지어 정박해 있고, 선봉 왜대선 4척이 초량 쪽으로 나오고 있다’는 첩보를 보냈다.

이순신은 곧 원균·이억기 등과 상의하기를 “우리 군사의 위세를 가지고 만약 지금 공격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간다면 적들은 반드시 우리를 멸시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독전기(督戰旗)를 휘두르며 진격하였다.

우부장 녹도 만호 정운, 거북선 돌격장 신의 군관 이언량, 전부장 방답 첨사 이순신,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 좌부장 낙안 군수 신호 등이 앞장서서 곧바로 돌진하여 왜적의 선봉 대선 4척을 우선 때려 부수고 불태워버렸다.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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