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
새해 인사
  • 문틈 시인
  • 승인 2023.01.0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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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깝게 알고 지내는 분들에게 새해 축하 인사를 보냈다. 옛날 같으면 연하 엽서나 카드에 몇 자 적어 제법 모양을 갖추어 보냈겠지만 요즈음은 스마트폰에 문자를 입력해 날려 보낸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이 편이 빠르고 또 세상 시속이 그렇다 하니 나도 간편하게 문자 메시지를 택한 것이다.

그 중 몇 사람에겐 이메일로 더 긴 문장과 예쁜 풍경 사진을 보냈다. 내 느낌이지만 사람들은 이제 문자나 이메일로 신년 인사를 보내는 것, 답장을 보내는 것을 조금은 귀찮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까닭으로 서운해하거나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대로의 새해 인사를 해야겠기에 했을 뿐이다.

한 분은 전화로 답신을 해왔다. “뭘 새해 축하를 한다고 그래? 한 살 더 먹는 것이 영 거시기하구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을 듣고 아뿔싸,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서로의 건강을 비는 말로 전화 대화는 끝냈지만. 대 선배 되시는 그분은 이미 80을 향해서 가고 있는 중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새해에 그림을 그린 세화라는 연하장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신년을 송축하는 의미로 왕이 신하에게 하사한 연하장 그림도 있었다. 조선 중기 이후 민가에서도 서로 세화를 주고받으며 새해 인사를 했다고 한다. 연초에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이들에게 장수, 행복, 건강을 비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연하장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요즈음은 신년 인사를 보내는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받아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임, 기대, 꿈 같은 것으로 가슴을 벅차게 하지는 않는 듯하다. 연하장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자극이 풍성한 시대에 그림, 문자, 이메일이 얼마나 보내는 이의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어쨌거나 나이에 상관없이 새해를 맞는다는 건 기쁜 일이다. 또 한 해를 산다는 것은 인생살이에 크낙한 선물 보따리를 받는 것에 진배없다. 생각을 바꾸면 새해를 매우 소중한 한 해로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해가 바뀐다고 새해가 되나요/내가 바뀌어야 새해가 됩니다.’ 다분히 종교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새해는 새로운 각오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피천득 시인은 이렇게 썼다.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마흔 살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나이 40까지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봄을 새해로 바꾸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새해를 40번이나 맞는다는 것은 작은 축복이 아니다. 그런데 대개는 봄을 70, 80, 그리고 90번 넘게 맞이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한 일인가. 그러니 새해를 축하한다는 것은 최고로 기쁜 덕담이다.

코로나로 세상이 어지럽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상이 캄캄하더라도 새해는 오고 삶은 계속된다. 나는 이 사실이 더없이 기쁘다. 무엇이 그리 기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으며, 살아갈 새해가 온다는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으랴.

나는 지인들에게 새해 연하 인사를 보내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삶에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괴테식으로 말하면) 방황한다. 그러므로 방황도 기쁜 일이다. 삶이란 그만큼 절대한 것이다.

나는 새해 첫날 아침 일찍 구순이 넘은 어머니께 전화로 새해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새해를 축하합니다. 올 한 해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건강해야 써야. 그래야 내가 올해 건강해야.”

이보다 더한 신년 축하 인사가 있을까. 어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좀 더 나를 보살피기로. 당신에게도 따뜻한 새해 인사를 전한다. 올 한해 늘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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