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남편
복 받은 남편
  • 문틈 시인
  • 승인 2022.12.3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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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나이 60줄로 들어서면 남편은 아내의 행동거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럴 것이 30여년을 반려자로 같이 살아온 아내이지만 남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시점이 바로 이때부터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생업에서 은퇴를 하고 부부 두 사람이 다 별다른 벌이 없이 얼마 안되는 국민연금과 그동안 저축한 알토란 같은 돈을 축내며 살아가는 밍밍한 생활을 하게 되는 이 무렵 아내는 밥, 빨래, 청소해 주며 가까스로 남편의 지위를 인정하는 정도로 대하거나, 아니면 지금껏 눈비 오는 날에도 반려자로 살아온 대로 남편을 일심동체로 삼고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일심동체란 가령 남편이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 보호자로 동행해 주는 등의 살가운 행동을 말한다. 남편에겐 아내가 노년기로 들어가는 이때가 아내로부터 최종 평가를 받는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되는 것이다.

저자에 유행하는 말처럼 ‘삼시새끼’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 세 끼 식사를 아내로부터 꼬박꼬박 제공받는 남편은 아무래도 평점을 좋게 받을 수 없다. 아내도 노년에 접어들고 있어 이제 좀 가사로부터 해방을 기대하고 있는 참인데 남편이 방구석을 지키며 매일 삼시 세 끼를 바라는 것은 아내로선 불만거리가 될 수 있다.

어디든 나가서 최소한 점심이나 저녁 정도는 해결하고 들어오는 것이 그나마 아내의 눈치를 안 보는 아슬아슬한 경계점이다. 결혼 후 일평생 가사에 찌들어온 아내로서는 예를 들면 교회 지인들과 수다를 떨며 해방감을 만끽하고 지내고 싶은데 남편이 그런 아내 속을 몰라보고 자꾸 집안에 붙들어 두려고 한다면 어찌 좋은 평점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남편의 입장에선 직장을 은퇴하고 주로 집을 중심으로 날을 보내는 처지에 아내를 동반자로 삼고, 아내를 친구 비슷하게 가까이 지내고 싶은데 아내는 남편의 바람과는 멀어진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되게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남편들은 나이가 70 가까이 되면 몸도 예전같지 않고 사교 범위도 거의 사라져 아내 의존증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직장에 나갈 때는 가장으로서 위상을 지킬 수 있었지만 은퇴한 후로는 아내의 처분만을 바라게 되는 신세로 떨어진다.

다시 아내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결혼 후 입때껏 주부, 어머니, 아내로서 살아온 터에 이제 해방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데 남편이 앞을 가로막고 성가시게 한다면 어떡하겠는가. 일본의 아내들은 이때 황혼이혼을 해서 홀로 살고 싶어한다고 하지 않던가. 안됐지만 남편으로선 밥, 빨래, 청소해 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다.

북한에서도 나이 들어 하릴없이 집에 틀어박혀 아내 손길만을 기대하는 남편을 ‘낮전등’이라고 한다고 한다. 낮에는 전등을 켤 필요가 없는데 불을 켜놓고 있는 전등 신세란 말이다. 늙어가는 남편들은 어디서나 딱한 처지인가 보다.

자식들은 결혼해 나가고, 이제 늙어가는 부부만 남았는데 아내가 남편을 멀리하고 밖으로 나간다면 남편으로선 대책이 없다. 꼬불쳐 놓은 돈이라도 좀 있다면 아내와의 사이가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을 걸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아내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병원에 혼자 오는 남자 노인을 보면 측은하다. 허리를 구부리고 진료실을 찾는 모습이 눈물겹다. 간혹 이런 남편과 짝하여 같이 오는 고마운 늙은 아내도 있다. 그런 남편은 행복해 보인다.

나는 병원에 자주 가는 편인데 천운인지 행운인지 그때마다 아내가 함께 한다. 아내는 “이 나이 먹어서도 아내가 운전해서 남편을 병원에 케어해 주는 아내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내가 착한 아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내로부터 평점을 후하게 받은 것 같다. 복 받은 남편인가 싶기도 하다.

참고로 나는 설겆이도 하고, 청소도 하고, 부추전을 부칠 때도 있다. “옛말에 백년해로라는 말이 있는데 같이 인생 후반기에 서로 사랑하고 아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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