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만점자
수능 만점자
  • 시민의소리
  • 승인 2022.12.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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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야기다. 아들의 고교 입학식에 참석했다. 고교 합격을 축하하고 신입생으로서의 출발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신입생과 학부모들이 가득 모인 입학식에서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신입생 여러분, 앞으로 3년을 죽어라 열심히 공부하면 여러분은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힘들게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자 이른바 명문 학교로 알려진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머리를 한 대 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말하는 축사의 내용은 살벌하고 즉물적이고 속되었다. 아무리 고등학교가 대학입시의 준비과정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고 3까지 3년간 공부를 잘해서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면 명문 대학을 갈 수 있고, 명문 대학을 나와야 연봉이 높은 대기업에 취직을 할 수 있고, 대기업에 들어가야 결혼도 잘할 수 있고, 그래서 좋은 집을 사고, 자식들을 낳아 훌륭한 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고 있다고 해도, 교육자가 어린 신입생들에게 대놓고 저렇게 적나라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살짝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고교 3년간 죽어라 공부하면 평생 편안하게…’ 아들이 죽어라 공부하는 것이 나는 무섭고 두려웠다.

며칠 전 2023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나왔다. 수능을 실시하는 목적은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 측정’을 위한, 그리고 고교 교육의 정상화, 대입전형 자료 제공을 위한 것이라고 나와 있다.

아닌 말로 수능은 그 교장선생님의 말마따나 어쩌면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결정할 대학문을 여는 열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인의 딸은 이른바 ‘인서울’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도권 변두리 대학에 갔다가 졸업 후 계약직으로 전전하던 중 다시 수능에 도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이렇듯 수능은 한 사람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다. 맞다. 나도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인생관과 세계관을 걸고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수능이 고교 과정뿐 아니라 중학교, 나아가서 초등학교 과정 전체를 포괄하는 마지막 한판의 수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현실이 왜곡되어 초중고 전 교육과정이 또 하나의 학원이 되어 버린 것을 나는 슬퍼하고 통탄한다.

고등학교 과정의 가장 큰 목표는 ‘건전한 시민 양성’에 있다. 고교 시절에 건전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양식, 건강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교육이다. 아무리 고교 과정이 제2의 학원으로 전락해버렸다고 하지만 이 점을 놓치면 교육은 하나마나다.

교육부가 명시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목표에도 ‘고등학교 교육의 성과를 바탕으로 학생의 적성과 소질에 맞게 진로를 개척하며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것으로 못박아 놓았다. 적어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원’은 아니라는 말이다.

수능결과가 발표되자 언론은 일제히 수능만점자 사진을 올리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만점자가 3명이 나왔는데 그 중 한 명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 30분까지는 학교에 머물렀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은 ‘밤 12시 30분에 자서 새벽 6시 30분에 기상했다’고 한다. 하루 6시간 정도 잠을 자고 죽어라 공부만 했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노력이요, 성취다.

수능은 6개 영역에 총 190문제가 출제되는데 만점은 450점이다. 인생의 일대사인 시험이 하루 350분에 걸친 시험에서 결판이 나는 것이다. 한 문제가 틀리면 편안한 인생이 안될 수도 있다.

건전한 시민 양성은 뒷전이고 오직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목표가 되고 있는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뜯어고쳐야 한다. 하루 6시간 잠을 자야 하는 '청소년 학대 교육'을 시정해야 한다.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연극을 하고, 등산을 하고, 이웃나라를 여행하고, 청소년기에 닦아 주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10대 시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죽어라 공부만 시켜서 대체 어떤 인간을 만들어내자는 것인가. 수능만점자를 영웅으로 받드는 것이 정말 맞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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