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충선 [장흥문화마당 대.농민]
문충선의 산골마을 이야기장마비가 내립니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쳐 흙담이 붉게 물들고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살구소리가 천둥소리 마냥 무섭습니다. 논밭 갈아 콩 심고 팥 심고 모 심느라 고생했으니 허리 펴고 맛있는 거 해먹으며 쉬라는 하늘의 뜻일까요. 물론 나 같은 얼치기 농사꾼은 말고 허리 아픈 동네 아짐아재들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농사도 변변히 짓지 않는 저만 강진으로 놀러 갑니다.
강진문예마당이 준비한 작은음악회는 하필 4강 진출을 놓고 스페인과 경기가 열리는 날입니다. 연장전을 거쳐 승부차기까지 가면서 경기가 늦게 끝나 장흥문화마당 사람들이 군청안 쉼터에 모인 때는 예정된 행사시간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경기를 TV로 보았을 사람들은 짐짓 말을 아끼고 있지만 얼굴마다엔 즐거운 흥분을 전부 감추지는 못합니다. 수 백만 거리공연이 펼쳐진 오늘 우리는 겨우 일 이백명이 모일 작은 공연에 놀러 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씩은 교과서에 실린 '모란이 피기까지는'를 암송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영랑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산은 강진 출신이 아닐뿐더러 그의 삶과 사상이 너무 넓고 깊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닌지. 지연이란 불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섰더라도 다산의 삶과 사유를 노래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는지. 즐겁게 놀러와서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솔잎"의 맑고 감미로운 ,"청사"의 능청스런 '인사동',"해바라기"의 쉬원쉬원한 '누구없소',"하늬바람"의 두텁고 깊은 '아침이슬', 김광석의 슬픈 미성의 매혹과는 다르게 굵은 음성으로 기교없이 무심하게 변주한 두 젊은 벗들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와 '내 사람이여'.
키타 하나로 이 다채로운 모든 곡을 소화해낸 '나루'식구들의 솜씨에 쉴 새없이 박수 치고 괴성을 질러야 했습니다. 기타 하나 달랑 매고 MT온 기분으로 그 소박한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을 만끽했습니다. 그 감동은 꾸며서 잘 보여주어야겠다는 강박에서 풀려나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노래하는 유쾌한 긴장에서 왔던 것이 아닐까요.
당당한 아마추어리즘의 승리!(승리는 축구 경기에만 있는 게 아니지요)
강진문예마당은 지난 해까지는 가수를 초청해서 공연을 가졌답니다. 스스로 노래하고픈 자유로운 욕망을 가진 이들이 관객으로만 남아 있자니 얼마나 답답하고 허전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삶의 문화가 우리가 가꿔나가야할 지역문화 아닐지"
마침내 노래모임 '나루'를 결성하고 6개월만에 용기 있게 무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래모임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노래방에도 가지 않게 되었답니다. 주어진 익숙함에 길들이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가며 즐길 줄 아는 문화. 바로 이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삶의 문화가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지역문화가 아닐는지 - 창조하는 아마추어 정신으로.
내 맘대로 상상해 봅니다. '나루'의 다음 공연에는 분명히 지금, 여기 강진의 당당하고 긍정적인 삶을 노래하는 창작작품 한 두 곡이 선보일 것이라고. (월드컵 4강전에 등장한 붉은 악마의 슬로건 "꿈은 이루어진다"는 "꿈은 이루어졌다"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16강에 1승이 대~한민국의 꿈 아니였나요.)나의 이 소박한 꿈이 강진의 즐거운 꿈으로 확장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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