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처럼
고구마 줄기처럼
  • 시민의소리
  • 승인 2022.09.0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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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는 뱅갈 고무나무가 두 그루, 산실베리아 화분이 하나 있다. 나는 이들에게 정성을 댜해 물을 주고 거름을 준다. 덕분에 식물들은 잘 자라고 있다. 산실베리아는 너무나 잘 자라 화분을 가득 채울 정도로 풍성해져서 곧 분갈이를 해줄 때가 되었다.

시멘트 상자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녹색잎들이 피어나는 것을 집안에서 보는 것은 내게 두고는 참으로 귀한 여유다. 푸릇푸릇 생장하는 식물들의 활기찬 생명력에서 나는 날마다 삶의 기운을 얻는다.

지난 봄에는 이들 화분에 부엽토를 구해다가 두텁게 덮어주었는데 그 탓인지 훨씬 더 짙푸르게 무성한 자태를 뽐낸다. 두 화분의 뱅갈 고무나무 잎사귀들을 헤아려 보았더니 여든여덟 개다. 해마다 가지가 자라나고 잎이 새로 나고 나무는 조금씩 더 커진다.

새 잎이 나는 한편으로 낙엽도 생겨난다. 부지런히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다. 나무가 아주 조금씩 자라는 것은 아마도 화분의 크기에 맞추어 나무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언젠가 한번은 녹색빛을 잃고 시들어가는 잎을 미리 따주었는데 떨어진 자리에서 하얀 수액이 스며 나왔다.

아직 떨어질 때가 아닌데 미리 따주다 보니 생채기 비슷한 상태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 하얀 수액은 끈적끈적하고 접착력이 무척 강했다. 한참을 비누칠을 하고 나서야 손가락에 붙은 수액을 씻어낼 수 있었다. 그 액체를 모아 가공을 하면 고무가 되는 것이 아닌가싶다.

봄, 여름, 가을에는 창 가까이에 화분을 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창으로부터 떨어져 옮겨 놓고 보살핀다. 창 가까이 두면 자칫 얼어 죽을 수 있다. 뱅갈 고무나무는 나와 함께 3년 넘게 지내고 있다. 풍류를 아는 옛 선비들은 집안에 난초를 키우기도 했는데 나로서는 언감생심이다.

듣건대 난초는 고무나무, 산실베리아 기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전문성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는 난초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알뜰히 가꾼 난초분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리고 무소유를 은유한다.

전에는 해마다 난초 대회 같은 것이 열렸다. 누가 더 멋지게 난초를 잘 길렀는지 컨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난초는 그 값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이름난 난초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값이 비싸다.

내게는 함부로 기르는 뱅갈 고무나무나 산실베리아 정도가 딱이다. 난초처럼 고아한 기품을 찾기는 어렵지만 무성한 푸르름을 마주하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 한번은 화원에서 국화 화분을 구해 왔는데 집안에 진한 향기가 가득해서 오히려 부담스럽고, 꽃이 떨어질 때마다 치워야 하고, 꽃이 다 져버린 후에는 처리도 번거로워 그 뒤론 꽃 화분은 들여놓지 않는다.

얼마 전 갑자기 고구마가 먹고 싶어져 몇 개를 사왔는데 그 중 하나를 집어 따로 큰 대접에 넣고 물을 붓고 거실 벽 옆에 놓아두었다. 싹이 나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그랬더니 여러 날이 지나고 나서 대접 안의 고구마에서 많은 싹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가운데 가장 튼실해보이는 싹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잘랐다. 고구마 푸른 싹은 쑥, 쑥 자라 솟아올랐다. 고구마 줄기가 벽을 타고 올라가도록 한 뼘씩 벋어 나갈 때마다 줄기를 테이프로 벽에 붙이면서 자라는 것을 인도했다.

고구마 줄기는 놀랍게도 거실 천정까지 다다랐다. 마치 담쟁이덩굴처럼 벋어 올라간 고구마 줄기는 천정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고구마가 들어 있는 대접에는 그물 모양을 한 고구마 잔뿌리들이 그릇을 가득 채워 물을 빨아들인다.

대체 무슨 힘이 있어 이 작은 고구마 하나가 줄기를 천정까지 기어오르게 하는 것일까. 무슨 힘으로 가느다란 줄기에 물을 빨아 올려 천정 높이까지 밀어 올릴까. 너무도 신비스런 생명력에 찬탄하며 나는 물을 부어주며 고구마를 응원한다. 네가 벋을 수 있는 끝까지 가보라.

고구마 줄기는 잎새들을 낙엽처럼 떨구며 겨우 두세 잎만 거느린 채 천정을 타고 벋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이 필사적이다.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구마 줄기에 내 삶의 결의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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