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87) - 看鏡(간경)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87) - 看鏡(간경)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8.2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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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세상사 알만하니 온통 백발 새롭구나 : 看鏡 / 난고 김병연

거울을 보면서 자기를 조롱하며 던지는 말은 ‘이 사람아 자네 그게 뭔가. 할아버지 다 되셨네 그려’하면서 자기 얼굴 변색을 두고 한 마디 던진다. 백발과 은근한 대화의 한 마디. 그러면서 지나간 청춘도 원망한다. 청춘시절에 내 얼굴도 옥처럼 고왔거늘 하면서… 머리카락만 희끗희끗 한 것은 아니다. 주량은 백발을 능가한다. 주량이 느는 만큼 가진 돈일랑 몽땅 말라갔었지, 이제 세상사 알만하니 온통 백발이 새롭구나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看鏡(간경) / 난고 김병연

백발이여 자네가 김 진사가 아닌가,

나 역시 청춘시절 옥처럼 고왔는데

세상사 돈은 없지만 하얀 백발 새롭네.

白髮汝非金進士 我亦靑春如玉人

백발여비김진사 아역청춘여옥인

酒量漸大黃金盡 世事纔知白髮新

주량점대황금진 세사재지백발신

이제 세상사 알만하니 온통 백발 새롭구나(看鏡)로 직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으로 일명 김삿갓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백발이시여! 자네가 김진사가 아니던가 / 잘 나간 청춘에는 옥처럼 고왔었는데 // 주량이 이렇게 느는 만큼 가진 돈일랑 몽땅 말라갔었지 / 이제 세상사 알만하니 온통 백발이 새롭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거울을 보면서]로 번역된다. 회고록이나 참회록을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덧없이 지나온 자신의 자취를 돌아보는 자기만족의 경우겠다. 해놓은 일 없이 훌쩍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지난날을 후회한 나머지 미래지향적인 설계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너무 늙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인도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거울을 쳐다보며 지난날의 자기 회고에 몰입하는 분명함을 보이고 있다. ‘오~오. 백발이시여! 자네가 아무개골 김 진사가 아니던가, 그래 나일세. 나 역시 청춘에는 옥처럼 고왔다네’라는 김립金笠이 자문자답 하는 글이다. 첫 구절은 스스로 묻는 시상이고, 두 번째 구절은 이에 대답하는 형국이다. 잘 나가던 청춘에는 옥처럼 얼굴이 고왔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유도해냈다. 화자의 말로 이어지는 다음 문장은 첫 소절의 물음에 대한 대답의 연속에 둔 시상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주량이 느는 만큼 가지고 있던 돈도 이제는 주머니에서 다 말라갔으니, 세상사 이제야 알만하네 백발이 이렇게 새롭구먼 그래 라는 대답이 그것이겠다. 그 물음에 대한 척척 맞는 대답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자네 김진사 아닌가 잘 나간 청춘 고왔는데 주량 늘어 돈지갑 말라 온통 백발 새롭구먼’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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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작가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으로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이다. 1811년(순조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에 의해 집안이 망하였다. 하인 김성수의 구원을 받아 형 김병하와 함께 피신한 후 방랑시인으로 일생을 보냈다.

【한자와 어구】

白髮: 백발이시여! 汝: 자네는 非: ~이 아니던가. 金進士: 김진사. 我亦: 나 또한. 靑春: 청춘에. 如玉人: 옥처럼 고운 사람이다. // 酒量: 주량이 늘다. 漸: 점차. 大黃金盡: 황금이 많이 다해버렸다. 世事: 세상사. 纔: 겨우. 知: 알다. 혹은 알만하다. 白髮新: 백발이 새롭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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