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 - 9회 이순신, 경상도 장수들의 무능을 한탄하다.
충무공 이순신과 거북선 - 9회 이순신, 경상도 장수들의 무능을 한탄하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 승인 2022.08.2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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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1592년 4월 30일 오후 2시에 경상도로 출전을 잠시 미루는 장계를 조정에 올리면서, 뒷부분에 이렇게 적었다.

“흉악한 무리들이 벌써 조령을 넘어 곧 서울을 육박하게 되어 본도 관찰사(이광)이 홀로 분발하여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곧 서울로 향하여 왕실을 보호할 계획이라 하는바, 신은 이 말을 듣고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칼을 어루만지며 혀를 차면서 탄식하고, 또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서울로 달려가 먼저 육지 안으로 들어간 적을 꺾으려고 하나, 한 지역을 지키는 신하의 몸으로써 함부로 하기 어려워 부질없이 답답한 채 분함을 참고 스스로 녹이며 엎드려 조정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오늘날 적의 세력이 이같이 왕성하여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은 해전에서 적을 막아내지 못하고 적을 마음대로 상륙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상도 연해안 고을에는 깊은 도랑과 높은 성으로 튼튼한 곳이 많은데, 성을 지키던 비겁한 군졸들이 소문을 듣고 간담이 떨려 모두 도망갈 생각만 품었기 때문에 적들이 포위하면 금방 함락되어 온전한 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번 부산 및 동래의 연해안 여러 장수들만 하더라도 배들을 잘 정비하여 바다에 가득 진을 치고 엄격(掩擊)할 위세를 보이면서 정세를 보아 전선을 알맞게 병법대로 진퇴하여 적을 육지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더라면 나라를 욕되게 한 환란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매 분함을 참을 수 없습니다.

원하옵건대 한 번 죽을 것을 기약하고 곧 범의 굴을 바로 두들겨 요망한 적을 소탕하여 나라의 수치를 만 분의 일이라도 씻으려 하는 바, 성공하고 실패하고 잘 되고 못되는 것은 신이 미리 생각할 수 없는 바입니다.”

(이순신 저·조성욱 역, 이순신의 진중 보고문 임진장초, 1997, p 31)

그러면 5월 1일의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수군들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이날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고 남풍이 세게 불었다. 진해루(진남관 앞에 있는 누각)에 앉아서 방답첨사 (이순신 李純信), 흥양현감 (배흥립), 녹도만호(정운)등을 불러들였다. 모두 격분하여 제 한 몸을 생각지 않으니 실로 의사(義士)라 할만하다. ”

5월 2일의 ‘난중일기’이다.

“송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남해현령(기효근), 미조항 첨사(김승룡), 상주포·곡포·평산포 만호(김축)등이 왜적의 소식을 한 번 듣고는 벌써 달아났고, 군기(軍器)등의 물자가 모두 흩어져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 날 정오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의논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 신호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아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어디 될 일인가.”

이를 보면 이순신은 선상(船上)에서 5관 5포 지휘관 회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휘관들에게 지금까지의 전황을 설명하고 경상도로 싸우러 가는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낙안군수 신호가 출전에 반대의견을 폈다. 관할 구역인 전라도만 지키면 되지, 관할 구역도 아닌 물길도 잘 모르는 경상도까지 전투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이러자 녹도만호 정운이 출전에 찬성했다.

“왜적을 치는 데 전라도, 경상도가 어디 있습니까? 영남은 호남의 울타리인데 울타리가 무너지면 호남도 보전하기 어렵습니다. 영남을 돕지 않고 편안함만 찾으려 한다면 적을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격입니다.”

그런데 1592년 5월 1일 자 ‘선조수정실록’에는 경상도 출전에 반대한 장수가 낙안군수 신호만이 아닌 여러 장수였다. 실록 관련 부분을 살펴보자.

“이순신은 여러 포(浦)의 수군을 앞바다에 모으고 적이 이르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러 장수들은 대부분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지역을 지키기에도 부족한데 어느 겨를에 다른 도에 가겠는가.’하였다. 그런데 녹도만호 정운과 군관 송희립만은 강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순신에게 진격하기를 권하여 말하기를 ‘적을 토벌하는 데는 우리 도(道)와 남의 도가 따로 없다. 적의 예봉을 먼저 꺾어놓으면 본도도 보전할 수 있다.’ 하니 이순신이 크게 기뻐하였다.”

조선과 일본의 전투함 (서울 세종문화회관 충무공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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