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에서
폭우 속에서
  • 시민의소리
  • 승인 2022.08.1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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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도 거칠게 내리친다. 산사태가 일어나고 하수도가 넘쳐 도로가 물에 잠긴다. 옛 어른들은 이렇게 비가 억수로 내리면 ‘논이 비에 떠내려 갔다’라고 말한다. 그해 농사일을 망쳤다는 말이다.

며칠 동안 비가 내리 쏟아 붓자 사람들이 거주하는 반지하에까지 물이 넘어들고, 도로 맨홀뚜껑이 열리면서 그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죽는 비극도 일어났다. 이번 비에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되었다.

나는 산을 깎아 세운 아파트 5층에 살고 있는데,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안절부절못한다. 비 걱정 없이 책을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이렇게 비 오고 바람 부는 날 태평스레 지내고 있는 처지가 무엇인지 모르게 미안하고 송구하기까지 하다.

귀한 생명을 폭우에 휩쓸려 보내고 살아남은 고인의 가족들은 얼마나 슬플 것인가. 이것을 그저 불운이라고만 탓해야 할 것인가. 홍수에 죽은 희생자가 내가 아니고 타인인 것을 그저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안전망이 잘 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큰비가 내릴 때마다 상당수의 희생자가 생긴다. 큰비가 온다고 예보했으면 차를 몰고 나오지 말라고 대대적으로 외쳐대고, 흙벽 아래 사는 사람들은 대피하도록 미리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더 많은 비가 내렸다. 그래도 인명 희생은 한두 명에 불과했다. 우리보다 인구가 세 배나 많고 비도 엄청 많이 왔지만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보고 탄식할 때가 많다. 일본이 하는 일을 우리는 왜 못하는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닐 터인데 말이다.

분명히 기억하지만 이번에 비가 심하게 퍼부은 날 아침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비가 안 오는데, 하고는 모두들 차를 몰고 출근길에 나섰다. 그랬다가 삽시에 몰아치는 비에 차들이 떠내려가고 진흙투성이가 되고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 엄청난 손해를 목숨은 잃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할 것인가. 결국은 개인의 손해요, 크게는 나라의 손해다.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 한번 쳐다보고는 경각심을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된통 당한다. 지하철에도 물이 흘러들어 한때 열차가 못 다니고, 폭우, 홍수 앞에 속수무책이다. 자연재해에 가까운 사태에 안전망 구축은 한계가 있다고 해도 최소한 인명을 손실하는 일을 예방하거나 막아야 한다.

기후변화로 이런 거친 비바람이 앞으로 더 자주 있게 될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만 이런 것은 아니다. 유럽도, 아프리카도, 심지어는 북극도 재난에 가까운 극심한 기상변화를 겪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폭우로 사람들이 죽고, 유럽에서는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간다.

이 모든 사태는 인류가 자초한 것이라고 하는 설이 유력하지만 지구 온난화는 10만년 주기로 닥치는 지구의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 즉, 간빙기에 일어나는 일이라고도 한다.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는 기상변화에 대비하는 새로운 개념의 방어가 필요한 때다.

만일 비가 퍼붓는다고 예보한 날 모든 사람이 거리에 자가용을 끌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만일 비가 넘쳐 반지하로 흘러 넘어들 수가 있으니 대피하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우리가 기상 변화를 제어할 수는 없지만 재난에 대비할 수는 있다.

좀 더 촘촘한 대비책을 평소에 마련해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가령 비가 많이 와 피해를 예상한 수해위험 지도 같은 것을 만들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미리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생각해봄직 하다.

옛부터 정치를 치산치수라고 한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음악을 끄고 거실 창 너머 에 거칠게 다시 퍼붓기 시작하는 빗줄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지금 누군가는 이 비에 망연자실해 있을 것이다. 못내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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