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83) - 庭草(정초)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83) - 庭草(정초)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7.25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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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수룩 자라서 다시 섬돌 뜰을 많이도 덮었구나 : 庭草 / 완당 김정희

뜰의 봄풀이 봄비를 맞으면 무럭무럭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본다. 많이 자라다 보면 섬돌을 뒤덮고 풀인지 꽃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무성하게 자란 정원을 보면서 흔히 쑥대밭이 된다고도 했다. 제 시절을 만났으니 제각기 자기 자랑을 할 태세다. 아니 자기 생을 구가해야만 한다. 몇 풀끝은 봄바람에 간지러워 재주가 있어서, 붉은 색 발라 놓자마자 또 푸른 점을 찍었었구나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庭草(정초) / 완당 김정희

하나 씩 신발 자국 어제보고 지난 것

덥수룩 자라나니 섬돌 뜰을 덮었는데

봄바람 재구가 있어 푸른 점을 찍는구나.

一一屐痕昨見經 夢茸旋復被階庭

일일극흔작견경 몽용선복피계정

機鋒最有春風巧 纔末紅過又點淸

기봉최유춘풍교 재말홍과우점청

덥수룩 자라나서 다시 섬돌 뜰을 많이도 덮었구나(庭草)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1768∼1856)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나 씩 신발 자국 어제 보고 지났었는데 / 덥수룩 자라나서 다시 섬돌 뜰을 많이도 덮었구나 // 몇 풀끝은 봄바람에 간지러워 재주 있어서 / 붉은 색 발라 놓자마자 또 푸른 점을 찍었었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뜰 위에 돋은 풀]로 번역된다. 뜰에 돋아난 풀이 쑥쑥 자람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스한 햇볕을 받아 자라고 있는 정원의 풀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우거진다. 촉촉한 봄비를 맞으면 춤이라도 출 양으로 그 자태가 늘름하다. 어린 싹의 색깔도 처음엔 누런 색깔을 하면서 땅을 밀고 나오더니만 자라면서 푸르스름해진다. 시인은 이런데 착안하여 정원에서 자란 풀의 모습을 묘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나 씩 신발 자국은 어제 보고 지난 것들이 덥수룩 자라나서 섬돌 뜰을 수북하게 덮었다는 시상 주머니를 가만히 만지고 있다. 어제 걸어 갈 때는 신발에 닿을 만큼 자랐더니만, 오늘 지날 때는 벌써 섬돌을 수북하게 덮었다는 선경先景이다. 화자는 풀들이 봄바람을 만나면 재주를 부리면서 붉은 색을 발랐더니 다시 푸른 점을 찍었다는 후정後情을 담아냈다. 몇 풀끝은 봄바람을 받아 재주가 있어서 붉은 색을 발라 놓자마자 또 다른 푸른 점을 찍었다고 했다. 신비로운 조화의 묘미다. [기봉機鋒]은 창이나 칼의 날카로운 끝을 뜻하기도 하지만 공격이나 언변의 날카로움을 비유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신발 자국 보이더니 섬돌 뜰을 덮었구나, 봄바람에 간지러워 푸른 점을 찍었구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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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작가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68∼18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이며 서화가로 알려진다. 1819년(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예조참의, 설서, 검교, 대교, 시강원 보덕 등을 두루 지냈다. 1836년에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했다. 글씨에 능하여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一一: 하나 씩. 屐痕: 신발 자국. 昨見經: 어제 보았던 길. 夢: 꿈. 茸旋: 무성하게 자라다. 復: 다시. 被階庭: 섬돌을 덮었구나. // 機鋒: 몇 칼날. 最: 가장. 有: 있다. 春風巧: 춘풍의 기교. 纔: 겨우. 末紅過: 붉은 색 바른 지 얼마 되지 않자. 又: 또. 點淸: 푸른 점을 찍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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