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스테핑
도어스테핑
  • 시민의소리
  • 승인 2022.07.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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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매일 용산의 대통령실로 출근한다. 대통령실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로부터 한두 가지 질문을 받는다. 질문은 대체로 국정 현안이나 어제오늘 일어난 일에 대한 질문들이다.

미국 백악관에서 하던 관례를 모델로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과거 대통령들은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 갇혀 권위와 불통의 대통령 이미지를 준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용산 대통령’의 새로운 모습은 신선해 보인다. 국민과 접촉면을 넓힌다는 점에서 국민과 대통령의 거리를 가깝게 해 주기도 한다.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은 그날 출근길에 무슨 질문이 튀어 나올지 알 수가 없다. 과거 일년에 한두 번하는 대통령 기자회견 같은 경우는 질문자가 거의 정해져 있거나 질문도 상당 부분 예상 범위에서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도어스테핑은 완전히 다르다. 예상 질문을 미리 알아 가지고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4용지나 수첩에 미리 써온 것을 읽을 수 있는 장면도 아니다. 대통령은 국정의 주요 현안은 물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 도어스테핑은 무엇보다 유머 감각이 필요한 능숙하고 순발력이 필요한 ‘허들’ 넘기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대통령실에 반려견을 계속 둘 것인가?”, “김건희 여사는 담당 부속실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질문들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더 시시콜콜한 질문도 나올 수 있다.

최근에 윤석열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에서 실언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연이은 장관후보 부실 인사 검증 책임론에 대해 묻자 "전 정권 인사 중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라고 대답했다. 이 답변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크게 떨어졌다. 옳다구나 하고 기자들의 벌떼 같은 질문이 이어지자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고개를 돌린 채 대통령실로 들어갔다.

이 장면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정권들의 인사에 대한 평소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사 검증 문제로 압박을 받고 있었던 데 대한 감정 토로였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도 사람이니까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서 한마디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짤막한 도어스테핑의 질문이라 해도 국민과 소통하는 장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감정을 드러내서도 안되고 침묵해서도 안된다.

정치9단으로 통하는 박지원 전국정원장이 ‘말 잘하는 DJ도 대통령 된 뒤로는 원고를 읽었다’면서 즉문즉답의 ‘도어스테핑'에 대해 “신선하지만, 반드시 사고가 난다”고 우려한 바 있다. 솔직히 중요한 국정현안은 도어스테핑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내가 볼 때 아직 정착이 안된 도어스테핑은 그래서 조마조마하다. 차라리 매일 아침 기자들을 만나는 길에 아침 인사를 하는 정도로 덕담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일주일에 한 번만 한다든지,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만일 이대로 계속 도어스테핑을 하다 보면 더 큰 실수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지지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 나는 도어스테핑이 자칫 대통령에게 도어스토핑(Doorstopping)이 될까 염려한다.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한 대통령도 있었다. “오늘 넥타이가 썩 어울려 보입니다. 김건희 여사가 고른 건가요?”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그런 좋은 말을 해줄 리가 없다. 차라리 도어스테핑보다는 한 단계 더 접촉면을 넓힌 루즈벨트의 ‘노변정담’ 같은 차분한 형식의 소통이 낫지 않을까.

국민에게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상하게 알릴 수 있고 국민과 친근한 국정 현안을 공유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두터운 신뢰와 기대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지지율도 더 올라갈 것 이고….

일단 오늘 뉴스에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이유는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라고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도어스테핑으로 언론과의 접촉면을 늘려 국민소통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질문에 따라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거나 즉흥적인 대답이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선을 넘는 등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는 문제를 고려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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