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꾹새의 노래
뻐꾹새의 노래
  • 문틈 시인
  • 승인 2022.07.0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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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숲에 갔었다. 큰 아이가 서너 살 때쯤이었다. 우리는 깔개를 펼치고 앉아 준비해간 먹을거리를 꺼냈다. 그때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뻐꾹~뻐꾹~” 멀리서인 듯 아련히 들리는 울림소리가 모처럼 숲에 온 우리 가족을 즐겁게 해주었다.

하늘엔 흰 구름이 흘러가고, 우리가 앉아 있는 주위엔 곳곳에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뻐꾹새가 우리더러 들으라고 “여름이다!”하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귀를 기울여 어느 쪽에서 우는지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눈으로 찾아보았다.

그때, 큰아이가 먹던 것을 내려놓고 내 손을 잡아끌며 숲 속으로 가자고 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빠, 저기 숲 속으로 가요. 빨리요.” 그러면서 “시계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금세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래, 뻐꾸기 시계가 숲에 있으니 그것을 찾으러 가자는 말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뻐꾸기 시계가 벽에 걸려 있었다. 결혼선물로 누가 선물한 것인데 좁은 거실 벽에서 시간이 되면 시계 문이 열리며 뻐꾸기가 나와 ‘뻐꾹~’하고 몇 번 소리를 내고는 문을 닫았다. 아이는 날마다 그 뻐꾸기 시계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자란 터라 비슷한 새소리가 숲에서 들려오자 우리 집의 뻐꾸기 시계 같은 것이 숲 속에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어떡해야 좋을지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애야, 저건 시계 소리가 아니고 뻐꾸기가 우는 소리란다. 숲 속에는 뻐꾸기 시계가 없단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혹시 아이가 크게 당혹스러워 할까봐 잠시 할 말을 찾았다.

“애야, 저건 숲의 시계야. 진짜 뻐꾹새가 여름이 왔다고 우는 거란다.” 그런데도 아이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분명히 저 숲 속에 뻐꾸기 시계가 있으니 찾으러 가자고 계속 내 손을 잡아끈다. 마침 그때 가까운 나무 우듬지에서 새가 날아올랐다.

“저 새야. 저 뻐꾸기가 울었다니까.” 잿빛의 날씬한 뻐꾹새가 숲 속 더 먼 곳으로 날아갔다. 뻐꾸기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주 가까이서 울어도 멀리서 우는 것처럼 아득히 들린다. 아마도 독특한 울림소리가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여운을 길게 끄는 듯한 뻐꾸기 울음소리는 애틋한 느낌마저 준다. 꾀꼬리 소리처럼 맑은 소리도 아니고, 까치처럼 거칠지도 않고, 산울림 같은 긴 여운이 짝하여 들리는 아득한 소리. 뻐꾹~뻑뻐꾹~

사실 뻐꾸기는 울지 않는다. 노래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신호다. 다른 새의 둥지에서 알을 깨고 나온 자기 새끼에게 엄마를 잊지 말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엄마 뻐꾸기는 자기 알을 뱁새 같은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낳아 놓고는 다른 새 품에서 자라는 새끼새를 둥지 근방에서 소리를 내며 지켜보는 것이다.

참 이상한 새다. 남에게 맡긴 새끼새가 날만큼 자라나면 데리고 떠난다. 뻐꾸기가 못돼서가 아니라 자연의 운행 질서에서 그렇게 살도록 타고 난 것이니 인간의 잣대로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자연은 인간의 지혜나 인식의 수준을 넘어선 오묘한 질서를 구축해 놓고 경영하고 있으니 뻐꾹새한테 우리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닌 것이다.

누가 아는가. 뻐꾹새는 다른 새에게 알을 맡겨 놓고 자기는 산울림 같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도록 타고 났는지. 나는 그날 저녁 잠자리에서 모처럼의 가족 원족에 서글픔을 느꼈다. 숲 속의 진짜 뻐꾹새를 집안의 뻐꾸기 시계의 새로 착각하며 살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함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뒷산 나무에 올라가 새둥지의 새알을 만져보기도 하며 자랐는데…. 자연을 멀리하고 오로지 문명을 진짜로 알고 살아야 하는 아이의 처지가 불쌍하기만 했다. 그 아이는 지금 성년이 되었어도 아스팔트 킨트(Asphalt-Kind)가 되어 문명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뻐꾹새는 지금도 숲에서 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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