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8) - 早秋㱕洞陰弊廬(조추귀동음폐려)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8) - 早秋㱕洞陰弊廬(조추귀동음폐려)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6.20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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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논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해오라기 모습만이 : 早秋㱕洞陰弊廬 其1 / 척재 이서구

해오리기를 보면 낚시질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먹이 사냥을 위한 방식이자 휴식이다. 낮에는 논 · 호반 · 소택지 · 갈대밭에서 생활하며 밤에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단다. 어류 · 새우류 · 개구리 · 뱀 · 곤충류 · 설치류 등을 주로 먹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에선 중부 지방에서 번식하는 여름 철새다. 대나무 숲속에는 아무도 찾아 볼 수 없는데, 무논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해오라기 모습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早秋㱕洞陰弊廬(조추귀동음폐려) 其1 / 척재 이서구

집 가에는 푸른 개울 어귀에 가까워서

해지는 저녁에는 개울 바람 차가운데

숲에는 해오라기의 모습만이 서 있네.

家近碧溪頭 日夕溪風急

가근벽계두 일석계풍급

脩竹不逢人 水田鷺影立

수죽부봉인 수전로영입

무논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해오라기의 모습만이(早秋㱕洞陰弊廬)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1754~1825)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집이 푸른 개울 어귀에 가깝게 있는데 / 날이 저물면 개울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구나 // 대나무 숲속에는 아무도 찾아 볼 수 없는데 / 무논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해오라기 모습만이]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이른 가을 골짜기로 돌아와 초가집 그늘에서]로 번역된다. 이른 가을이 되면 해오라기가 우두커니 서서 사색이 잠긴다. 사람이 보기에 사색이지 먹이를 낚시질하기 위해 먼 곳까지 응시하고 있다. 한가한 저녁 한 때다. 저 멀리 인가에서는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가족들이 빙 둘러 앉아 저녁밥을 즐겨 먹으려는 부산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들은 고운 꿈을 꾸고 깊은 잠에 취할 것이다. 시인은 이런 정경을 머릿속에 구상하면서 시상을 이끌어 냈을 것으로 보인다. 사는 집이 푸른 개울 어귀에서 아주 가까워, 날 저물면 개울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는 선경의 미동微動을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렴 해도 집이 개울에 가까우면 바람도 다른 곳보다는 세차다는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멀리 개울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후정後情의 시상은 고요한 대나무 숲을 한번 둘러보더니만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무논 쪽의 해오라기에 관심을 집중한다. 대나무 숲에는 아무도 없는데, 무논의 해오라기 모습만 우두커니 서 있다고 했다. 해오라기가 흰 옷을 입어 국상國喪이나 알고 있을까.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집은 푸른 개울 가깝고 개울 바람 세차게, 대나무 숲 비어있네 해오라기 우두커니’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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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작가는 강산(薑山) 이서구(李書九:1754∼1825)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1789년 상계군 이담의 모역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1791년 방환되어 승지를 거쳐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다. 1795년(정조 19) 천주교도를 옹호한 죄로 한때 영해부에 유배되기 했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㱕: 돌아오다. 洞: 골짜기. 陰弊廬: 초가집 그늘. 家: 집. 近: 가깝다. 碧溪: 푸른 개울. 頭: 어귀. 日夕: 날이 저물다. 溪風: 계곡 바람. 계곡에서 부는 바람. 急: 급하다. // 脩竹: 대나무 숲. 不逢人: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곧 ‘아무도 없다’는 뜻. 水田: 무논. 鷺影: 해오라기 모습. 해오라기 홀로의 모습. 立: 서있다.

{신문 등에 원고 연재할 경우}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 문학박사․필명 장 강(張江) //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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