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추억
반지의 추억
  • 시민의소리
  • 승인 2022.06.0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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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이 돌아가신 며칠 후 아내와 나는 장모님의 집 정리를 하러 갔다. 평소 즐겨보시던 책들이며, 아끼시던 커피잔 세트며, 작고 앙증맞은 탁자, 그리고 소파 등 처분하거나 정리할 것들이 있었다. 거주하시던 작은 아파트는 막내딸한테 넘겨주기로 했으나 남긴 유품들에 대해서는 별 말씀이 없었으므로 장녀인 아내가 나서서 처리하기로 했다.

그 중에 내 눈에 띈 것은 책장의 책들과 탁자 위의 작은 대나무 소쿠리에 담겨 있는 반지들이었다. 책들은 장모님이 즐겨 보던 일본 소설책들이 다수였는데 박완서의 수필집도 있었고, 반지는 딸들이 생전에 장모님에게 생일선물, 칠순, 팔순 선물 등 이런 저런 기념으로 해 드린 다이아반지, 수정반지, 진주반지, 금반지, 그리고 이름은 모르겠으나 반지가 두어 개 더 있었다.

내가 반지에 눈이 꽂힌 것은 갑자기 그 화려한 반지들이 너무나 슬퍼 보여서였다. 장모님 생전에 손가락들에 끼여 빛을 발하던 반지들이 주인이 돌아가시자 생명을 다한 듯 기운이 빠진 채 쬐그만 소쿠리에 담겨 웅숭그리고 있는 모습은 인생의 덧없음을 실감케 했다.

반지들, 그 하나마다에는 딸들과 어머니 사이에 주고받은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그 반지들을 원래 돈을 마련해서 장모님께 해드렸던 딸들에게 되돌아가도록 처리했다. 어머니에 대한 딸들의 존경과 사랑의 징표였고, 장신구로서 위엄을 뽐내던 반지, 그러나 반지는 주인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한낱 돌덩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되돌려 받은 반지를 받아들고 딸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나는 묻지 않아서 모르지만 마음 깊이 아리는 슬픔 같은 것이었을까. 인생의 덧없음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돈이 되는 장신구였을까.

사람들이 반지를 끼게 된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라고 한다. 청동기 시대엔 구리 반지가 유행했다고 하니 반지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별의별 기념으로 반지들을 주고받는다. 돌반지, 대학 졸업반지, 약혼반지, 결혼반지, 힐링 반지 등 기념과 축하를 뜻하는 반지가 대부분이지만 그냥 부를 과시하는 값비싼 장신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장모님처럼 양 손의 손가락에다 반지들을 끼고 있기도 한다. 나는 당최 반지를 끼어 본 적이 없다. 장신구 같은 것을 몸에 하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다. 뭐랄까, 반지를 어떤 기념이나 사랑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반지가 가리키는 궁극적인 덧없음을 생각하면 끼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는다.

보통 결혼반지는 네 번째 손가락인 왼손 약지에 낀다. 약지가 생명과 사랑을 상징하는 심장과 핏줄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약지에 끼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한다. 약지는 원래 이름이 없다고 해서 무명지라고도 불린다.

잘 안쓰는 손가락이라 퇴화될 운명이었는데 컴퓨터가 발명되고 나서 쓰임새가 커져 입지가 단단해졌다는 우스개말도 생겼다. 보통 반지는 손가락에 구애받지 않고 착용한다. 그렇긴 하나 하릴없는 사람들은 손가락마다 다른 뜻이 부여되어 있다고 믿는다.

약혼반지나 결혼반지를 끼는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은 앞서 말한대로 가슴과 관련이 있고, 검지손가락 반지는 방향을 지시하고 목적이나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가운데손가락 반지는 직관,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되고, 새끼손가락 반지는 로맨스, 성공, 삶의 변화를 이루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엄지손가락은 반지를 끼지 않는다는 둥.

재미있는 이야기는 약지는 두 손바닥을 펴고 양손의 가운데손가락은 구부린 채 서로 맞댄 상태에서 붙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면 오직 약지만 딱 붙어서 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의 반지를 약지에다 낀다는 것이다. 실험해보았더니 정말 약지 두 손가락이 마주 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헤어지지 말하는 뜻이란다.

내가 반지를 한 번도 끼지 않았다고 했는데 사실은 애써 생각을 더듬어 보니 아슴푸레 하게 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봄날 클로버꽃 두 송이를 엇갈리게 꽃대를 가로질러 꽃반지를 만들어서 손가락에 묶어주던 고향의 여자아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굳이 말하자면 하루도 못간 그 꽃반지가 내게는 그 후 오래도록 내 마음을 다스리던 절대반지였던 것 같다. 반지는 끼고 있을 때는 아름답게 빛나지만 주인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반지도 생명을 다한다. 반지도 슬픔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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