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5) - 閨怨(규원)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75) - 閨怨(규원)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5.2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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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 뵈올 기회가 그 나마 드무니 어찌할까 : 閨怨 / 안원

조선의 제도는 철저한 부권주의였다. 곧 남성위주 사회였다. 어려서 시집온 여자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창부수夫唱婦隨를 제일로 여겼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나설 수도 없었고, 시가를 지키며 살았다. 당시의 제도이고 관습이었다. 하 많은 세월동안 남편을 기리면서 살아야만 했었다. 15세가 못되어 시집온 여인이 마음에 얽히고설킨 심사를 하소연이나 하고자 하나, 그를 만나 뵈올 기회가 드무니 어찌하겠는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閨怨(규원) / 안원

방년에 열다섯에 유자에게 시집와서

이십 고개 다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데

마음에 엉킨 심사를 하소연을 할 수 없네.

十五嫁遊子 二十猶未婦

십오가유자 이십유미부

從慾道心事 與須相見稀

종욕도심사 여수상견희

그를 만나 뵈올 기회가 그 나마 드무니 어찌할까(閨怨)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안원(安媛)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방년 열다섯에 유자에게로 시집을 와서 / 이십 고개 다 넘도록 돌아오지를 않네 그려 // 이내 마음에 얽히고설킨 심사를 하소연이나 하고자 하나 / 그를 만나 뵈올 기회가 그 나마 드무니 어찌할까]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무정한 임을 원망하다]로 번역된다. 소실小室이 쏟아내는 규방의 원망은 모두 절절할 수밖에 없어 보인 작품이 많다. 여자가 남편을 따라 시집을 왔다면 남편 얼굴을 봐야 옳거늘 5년이 넘도록 얼굴조차 만나지 못했다면 그 원망과 한의 정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사대부들 위주로 맞추어진 조선이란 사회의 벽을 허물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제도이고 관습이었다. 당시의 제도는 남자는 12~3세가 되고, 여자는 15~6세가 되면 가장 알맞은 결혼 적령기로 생각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난 조기 혼인인 추세였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시기인 방년 열다섯에 남편에게 시집와서, 이십 고개가 다 넘도록 돌아오질 않다는 규원閨怨을 쏟아내고 만다. 이팔청춘에 첩으로 시집가서 그나마도 남편이 자주 들려주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화자에겐 쌓이는 한과 하소연은 산등성만큼 높았을 것이다. 이내 마음에 엉킨 심사와 하소연이 하 많은데도 남편을 만나 뵈올 기회마저 드무니 그 하소연을 어디에 풀어볼까를 염려하고 있다. 애타는 조선 여심을 그대로 보여준 경우리라.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열다섯 시집와서 이십 고개 못 만나니, 그 하소연 하고자 한들 만나 뵈올 기회 없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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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작가는 안원(安媛:?∼?)인 여류시인이다. 생몰연대는 알 수 없고, 다만 1711년(숙종 37) 9월에 서기관으로 사신으로 간 정사를 따라 일본에 간 판관 경호 홍순연(洪舜衍)의 소실로 알려진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十五: 십 오세. 嫁: 시집을 오다. 遊子: 유자. 아마 자기 남편인 듯. 二十: 이십이 되다. 猶: 오히려. 未婦: 한자어는 ‘시집가지 않다’는 뜻이나, 의미상으로는 ‘돌아오지 않다’. // 從慾 방종하다. 마음대로 하고자 하다. 道心事: 마음 일을 말하고자 하다. 與須: 모름지기 더불어. 相見稀: 상견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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