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꿀벌
사라진 꿀벌
  • 문틈 시인
  • 승인 2022.05.1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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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만년에 십년 훨씬 넘게 벌치기를 하며 지냈다. 트럭에 1백여 통의 벌통을 싣고 어머니와 함께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밀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트럭을 빌려 벌통을 싣고 이동하는 일은 밖에 나간 벌들이 다 들어온 오후 늦게 시작해서 벌통마다 마무리를 하고 밤 늦게야 이동을 하곤 했다.

해마다 3월이면 제주도에 가서 노란 유채꽃 들판에 벌통을 늘어놓고 벌들이 꿀 물어오는 것을 보다가 5월에는 당진에 가서 아카시아꿀을 따고 곧이어 성주에 가서 또 아카시아꿀을 땄다. 6월에는 강원도 평창의 미탄에 가서 싸리꽃꿀을 채밀하는 등 산꽃들의 꿀을 따는 것으로 한해의 벌치기를 했다.

보통 한해 네 다섯 드럼통의 꿀을 모았다. 이 꿀을 팔면 큰 수입은 아니어도 노부부가 한해의 생계를 꾸릴 만큼은 되었다. 게다가 양봉 일이라는 것이 공기 좋은 산천에 밀원을 좇아 꽃구경 다니는 셈이라 그것을 생각하면 보상이 썩 괜찮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벌치기 일은 먹이장으로 벌을 키우고 꿀을 뜨고 화분을 채취하고 여왕벌을 키우고, 벌통을 수리하는 등 하루종일 매달리는 일이 어수선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벌들이 열심이 물어온 꿀을 처분하는 일이 마땅치 않았다. 그 때는 4남1녀의 자식들 덕분에 이리저리 판매망을 확보했다.

벌치기들 중에는 드물기는 하지만 설탕 푸대를 수십 개씩 산골짜기로 싣고 와 물에 녹여서 벌들에게 먹여 꽃에서 따오는 꿀과 섞어 꿀을 생산하는 나쁜 벌치기도 있었다. 값을 헐하게 판매하니 그 꿀이 더 잘 팔려나갔다. 그런 행태를 보고 아버지는 크게 실망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설탕물로 벌들에게 먹이거나 하는 방식으로 꿀을 만든 적이 없었다. 생산량도 늘릴 수 있고 돈을 쉽게 버니 유혹을 받을 만도 했으나 손주들을 둔 나이든 노인이 하늘 아래 도저히 그 짓만은 못하겠다며 기어코 자연산꿀을 고집했다. 물론 겨울나기를 할 때는 불가피하게 설탕물을 만들어 벌들에게 먹이곤 했다.

벌치기를 하다 보면 가을 밤 같은 때는 사방 십 리 너머까지 인가 한 채 없는 들판에 텐트를 치고 노인 부부 둘이서 밤을 지새야 했다. 뱀이 기어들어 올까봐 텐트 주변에 백분 가루를 뿌려 놓고 무서울 정도로 고독하고 적막한 밤을 새웠다.

자다가 소피를 보러 텐트 밖으로 나가면 별들이 바로 이마에 닿을 듯 내려와 있다. 이건 내가 하는 표현이 아니라 아버지한테 들은 말이다. 별들이 텐트 밖에서 쏟아질 듯이 빛나는 밤, 어디선가 윙윙하는 소리가 들린다. 꿀벌들이 벌통마다에서 밤새도록 날개짓을 하며 하루종일 따온 꿀에 들어 있는 수분을 증발시키는 소리다.

벌치기라는 것은 알고 보면 벌에게는 아주 미안한 일이다. 벌들이 새끼를 기르고 겨울을 나려고 쟁여 놓은 꿀을 밀봉하기 직전에 꺼내어 채밀하는 것이다. 벌들은 죽어라 물어온 꿀을 사람에게 빼앗기고 다시 꿀을 따러 날아다닌다.

한 마리 꿀벌이 1그램의 꿀을 모으기 위해서는 8천 송이의 꽃을 찾아 40킬로미터를 비행해야 한다고 한다. 미련할 정도로 착한 꿀벌들은 비어 있는 벌통을 보고는 그들 집단의 양식인 꿀을 채우려 또다시 산으로 들로 나가 꿀을 따오는 일을 계속한다.

한마디로 사람이 벌통에서 꿀벌들의 식량인 꿀을 도둑질하는 것이 벌치기다. 그 슬쩍한 도둑꿀이 우리가 먹는 꿀이다. 이렇게 고된 일을 하는 꿀벌들은 고작 한 달도 못살고 죽는다. 꿀벌들은 꽃들로부터 꿀 한 모금을 얻는 대신에 꽃가루를 온몸에 묻혀 다른 꽃에 수분을 해주는 것으로 꿀값을 대신한다.

농작물의 결실에 필수불가결한 수분활동의 70퍼센트를 꿀벌이 전담하다시피 한다. 먼 옛날부터 꽃과 꿀벌의 이런 협약 원칙은 그렇게 흔들림없이 지켜져 왔다. 그러나 어인 까닭인지 작년부터 꿀벌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올 봄 내가 애써 꿀벌을 찾아보았는데 꽃이 한창인 아카시아에 잉잉거리던 꿀벌들이 안 보인다. 어쩌다 한 나무에 한두 마리가 눈에 뜨일 뿐이다. 이 동네도 저 마을도 다 마찬가지다.

지금 분명히 무슨 일인가가 꿀벌들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진드기, 전자파 영향이라는 둥 그 원인을 대고 있으나 꿀벌이 집을 나간 확실한 원인을 아직 모르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머지않아 사라진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던가?

나는 벌치기가 아니지만 집 나간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꿀벌들의 귀환을 고대하고 있다. 꿀벌들이 안 돌아오면 누가 과수원이며 산천 나무들의 결실을 이룰 것인가. 자연의 귀한 전령들에게 한 인간으로서 꿀벌들에게 용서를 청한다. 꿀벌들아, 지금 꽃들이 한창이다. 어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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