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후보'운동의 오만과 실패
'시민후보'운동의 오만과 실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6.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병준 기자가 이번 지방선거과정에서의 이른바 '시민후보'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정기자는 수년간 언론개혁단체에서 활동하며 언론운동과 사회개혁에 관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왔다. 지난 선거과정에서 '김태홍선배께 드리는 고언'이란 글을 기고하기도 했던 정기자의 이번 글이 올바른 '시민정치운동'의 자리매김을 위한 활발한 토론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나는 이 글을 꽤 오래 억눌러 왔다. 최소한 '시민후보'들의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시민후보'의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난 그 오류를 여러 차례 시민후보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는 나주의 신정훈 후보를 제외한 광역의원 이상 후보 모두 낙선이었다. 2002년 광주전남의 시민정치운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미래마저 불투명해졌다. 이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80년대 변혁운동이 계급갈등에만 집중하는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동구권의 붕괴와 전두환 정권의 퇴진을 계기로 '운동'은 인간의 소외와 환경 여성 등으로 관심의 폭을 넓혀갔다.

시민운동은 1960년대 유럽을 휩쓴 신사회운동에 이념적 뿌리를 둔다. 학생운동의 대대적 시위로 시작된 유럽의 신사회운동은 기존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개혁운동이었다. '시민'(citizen)이란 이름은 17세기 유럽에서 처음 사용되었을 때부터 교회와 절대 왕권에 도전하는 변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10년을 성장한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2000년 총선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시도한다.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던 낙선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정치권 밖에 머물렀던 시민운동이 낙선운동을 통해 정치 주역의 하나로 등장했다. 낙선운동이 성공하면서 다음 선거에는 기존 정치판에 물들지 않은, 정말 좋은 독자후보를 내자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2002년 선거가 지방자치선거이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은 더욱 높았다.

그렇게 기대를 모았던 시민후보운동이 2002년 오늘,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실패로 끝났다. 왜일까. 나는 지도부의 오만과 오판을 가장 큰 이유로 지적하고자 한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민주당의 공천이 불가능해진 정치인들이 '시민후보'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득표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민주당 소속 다선의원과 전직 관료. 자치연대는 이들에게 '시민후보'란 이름을 달아 주었다. 자신들이 민주당의 대안세력이라고 과대 평가하는 우쭐댐이 엿보였다. 그 턱없는 오만으로, 개혁성을 상실한 '공천'을 했다. 그 결과 '시민후보'는 '무소속 후보'보다 별로 나을 게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이름이 되었다. 소위 시민후보 가운데 민주당 후보보다 더 돈을 많이 쓴다는 후보도 있었다.

시민후보에 대한 자기 부정은 시민후보에게서 나왔다. 시민후보의 대표격인 정동년 광주시장 후보는 선거를 이틀 앞두고 무소속후보와 연대했다. 연대의 대상을 시민후보로 한정하지 않고 무소속 후보로 한 것 자체가, '시민후보'의 퇴색된 의미를 잘 나타내었다.

후보자들에게 시민후보라는 이름을 얹어 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는 데 이르면 시민후보운동의 뒤틀린 모습은 더욱 심각해진다. 선택과 집중. 시민운동진영이 뜻을 모아 후보를 냈다면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럴 역량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시민후보란 이름만 달아 놓고 선거운동은 각자에게 맡기었다. 그 결과 개인적인 재력과 기반이 있는 후보는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진짜 시민후보는 부진했다.

광주시의원 후보 조진상의 낙선은 정동년의 낙선보다 훨씬 더 안타까운 일이다. 시민후보에 걸맞은 경력과 시민후보다운 선거운동방식. 운동진영은 조진상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러나 조진상에게도 시민후보라는 이름을 달아주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무지했거나 부도덕했다. 지도부가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고해도 그 책임을 면할 순 없다. 대중은 물론이거니와 지도자에게 무지는 책임져야 할 죄악이다. 문제는 다음 선거에서도 '시민후보'를 무소속 후보와 별반 차별없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우려다.

다급함 때문이었을까. '시민후보' 그룹은 해서는 안될 일을 또 하나 저질렀다. 선거를 나흘 앞두고 발간된 오마이뉴스 특보는 '시민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된 것이 분명했다. 각 언론이 지지 후보를 밝히는 일부 국가에서도, 자기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사설에 제한한다. 일반 기사는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그러나 6월 9일자 오마이뉴스는 이런 게임의 룰을 저버렸다. 방향만 돌려 놓고 보면 군사정권시절 정부소유 언론사의 행태와 다를 게 없다. 민주주의는 '결과의 타당성'보다 '절차의 정당성'을 바탕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이런 자세로는 민주언론운동을 말할 수 없다.

이제 정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자세만이 과오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 방법만은 그들이 알고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