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65) - 규사(閨思)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265) - 규사(閨思)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3.14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등 돌려 물러서면서 공연히 서글퍼지는구나 : 閨思 / 홍성당 소실

조선 여인네들의 심사는 바깥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대체적인 시문의 주종을 이루었다. 기다림과 원망 속에 깊은 시름을 달래었고, 하소연 하는 방법은 시문을 통해서 그 심사를 다 토로했다. 시문이라도 쓸 수 있었던 여인은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 못한 여인은 한 숨과 여한은 어떻게 풀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 멀리서 배가 온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누대에 빨리 올라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閨思(규사) / 홍성당 소실

저 멀리 배 온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누대에 빨리 올라 멍하니 바라보니

조수에 지나는 배가 등 돌리니 서글퍼.

童報遠帆來 忙登樓上望

동보원범래 망등루상망

望潮直過門 背立空怊悵

망조직과문 배립공초창

등 돌려 서면서 공연히 서글퍼지는구나(閨思)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홍성당 소실(洪城唐 小室)로 알려진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저 멀리서 배가 온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나서 / 누대에 빨리 올라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네 // 조수에 곧 바로 지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 등을 돌려 서면서 공연히 서글퍼지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여인의 속 깊은 생각]으로 번역된다. 정든 임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빵끗했다는 노랫가락이나,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나 났으면 좋겠다는 한가락을 듣는다. 그렇지만 임을 기다리는 규원閨怨이나 규사閨思를 읊은 여인의 애간강은 타들어갔다. 남편이 배를 타고 온다거나, 배를 타고 고기잡이 나갔던 부인네의 심정을 다 마찬가지였으리라. 시인도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저 멀리 배가 들어온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빠른 걸음으로 누대에 올라 바라보았다. 시상의 흐름으로 보아 누대에 올랐던 일은 이번만은 아니었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누대에 올라 임을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을 가슴에 안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행여나 임이 내리시지나 않는 것인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건만 끝내 배는 정박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화자는 밀려오는 조수에 바로 지나쳐 버린 배를 멍하니 바라보고는 등을 돌아서면서 공연히 서글퍼졌다는 시상이다. 돌아서는 여인의 마음과 며칠을 기다렸던 심정을 충분하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배 온다는 말을 듣고 누대 올라 바라보네, 조수 지난 배를 보며 등을 돌린 서글픔만’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홍성당 소실(洪城唐小室:?∼?)인 여류시인으로 그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한자와 어구】

童報: 아이가 알려주다. 遠: 저 멀리. 帆來: 돛단배가 오다. 忙: 빠르게. 바쁘게. 登樓上: 누대에 오르다. 望: 바라보다. // 潮: 조수. 直過門: 바로 수문水門을 지나다. 背立: 등을 돌려 서다. 空: 공연히. 한갓. 怊悵 : ①근심하는 모양 ②실의 한 모양 ③마음에 섭섭하게 여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