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누구?...강골검사에서 청와대 주인으로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누구?...강골검사에서 청와대 주인으로
  • 박병모 기자
  • 승인 2022.03.10 07: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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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서"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로 각인
술과 친구 좋아하는 사시 9주...'신림동 신선' 별명
스님 소개로 52세에 늦깎이 결혼
국정농단 사태 특검 수사팁장 합류
문 대통령 2017년 취임 후 검찰총장 발탁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방송화면

2013년 10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여주지청장이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이렇게 내뱉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이다.

그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그의 운명을 바꿔 놓고 말았다. 국민들의 기존 정치권 반감이 환멸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그의 이 발언은 '검사 윤석열'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강골검사에서 청와대로 입성한 윤 당선인은 누구인가?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교수인 학자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경제학자였고, 어머니는 이화여대 교수였으나 결혼 후 학교를 그만뒀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윤 당선인은 대학생 때 친구들과 남의 밭에 들어가 콩을 서리해 먹은 일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윤 교수는 “농부가 힘들게 지은 농작물을 재미로 훔쳐서는 안 된다”며 마당에 있는 호스로 윤 당선인을 매질했다.

서울대 법대 시절 윤 당선인
서울대 법대 시절 윤 당선인/국민의힘

윤 당선인은 1979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윤 당선인이 대학에 입학한 해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혼란의 시기였다.
그는 1980년 법대 선배들이 대학 축제를 맞아 기획된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아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가 문제가 되면서 그는 3개월 동안 강원도 친척 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윤 당선인의 꿈은 검사가 아닌 법대 교수였으나 양 눈의 시력 차이가 큰 ‘부동시(不同視)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은 뒤 사시로 전환했다. 
윤 당선인은 사람 챙기는 것과 술자리를 좋아하고 오지랖도 넓은 편이라 사법고시 2차에 번번이 미끄러졌다. 친구 조부모가 상을 당하면 상여를 메고 자리를 끝까지 지킬 정도였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신림동 신선’이다.

윤 당선인은 사법고시 9수 끝에 1991년 합격했다. 첫 직장인 검찰 생활을 시작한 건 34세였다. 윤 당선인의 ‘강골’ 기질이 처음 싹을 드러낸 건 1999년이었다. 김대중 정부 경찰 실세인 호남출신의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이후 검찰 내부에서는 ‘보통이 아닌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승진은 물 건너간 외골수’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윤 당선인은 2002년 잠시 검찰을 떠나 1년간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나이도 있고 이제 결혼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권유한 것도 변호사 생활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가 돼서도 검사 체질을 못 버려 동료들을 당황하게 했다. 의뢰인에게 “그런 일 하면 안 되잖아요”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검찰로 복귀한 윤 당선인은 2003년부터 권력 중심부를 향한 대형 수사를 맡아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를 맡아 측근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사건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 정무팀장)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를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 담당 때는 정몽구 회장을 구속기소 했고, 2011년엔 부산 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2012년엔 아는 스님의 소개로 52세에 늦깎이 결혼하며 ‘검찰총장(검찰 총각 대장)’이라는 짓궂은 별명도 얻었다. 선거과정에서 허위학력 기재 등으로 논란이 됐던 띠동갑인 아내 김건희씨가 바로 그다. 결혼 당시 윤 당선인의 통장엔 2000여만원 밖에 없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취임 이후 청와대서 조국 전 법무장관의 축하를 받고 있다/국민의힘

윤 당선인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은 2013년 벌어졌다. 윤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 첫해 국정원 댓글 사건의 수사팀장을 맡았다. 윤 당선인은 본디 스타일대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게 칼을 겨눴다가 검찰 수뇌부를 비롯해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업무에서 배제됐다.

윤 당선인은 이틀 뒤 국정감사장에서 정권과 검찰 상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윤 당선인은 이 일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이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됐다. 당시 검찰 지인들에 따르면 길을 가다 윤 당선인을 보고도 본체만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3년이 채 되지 않아 윤 당선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국정농단 사태를 특검으로 수사하라는 국민의 압력이 거세졌다. 박영수 특검팀에 윤 당선인이 수사팀장으로 합류하면서다.

윤 당선인은 삼성 수사를 맡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뇌물죄로 구속기소했다. 박근혜·최순실·이재용 모두 구속 수감되면서 특검은 성공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마무리됐다. 윤 당선인은 이후 ‘국민 검사’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문재인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장면/국민의힘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2017년 취임한 문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핵심조직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임명 즉시 과거 자신을 좌천시킨 ‘국정원 댓글 사건’을 파헤쳤다. 전 정권에서 수사를 방해했던 검사들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기소했다. MB의 최측근 비서관까지 수사한 끝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구속기소했다.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1년 새 보수 정권의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 수감시켜 윤 당선인은 보수를 무너뜨린 주범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2019년 7월 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전임 총장에서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은 파격이었다. 검찰 역사에 없는 기록이다. 문재인 정부는 윤 당선인이 ‘검찰 개혁’의 주역이 돼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 달리 전개됐다.

윤 당선인이 총장 취임 뒤 휴가를 간 동안, 딸의 입시 비리의혹 등 조국 법무부 장관 관련 비리 의혹이 터져 나왔다. 윤 당선인은 번민 끝에 결국 ‘전격 수사’ 모드에 돌입한 윤 당선인은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조국 수사와 함께 유재수 전 부산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등 정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였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가 임명한 검찰총장을 여당이 비난하고 야당이 옹호하는 보기 힘든 광경도 연출됐다.

조국이 물러나고 임명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강경하게 윤 당선인을 몰아붙였다. 검찰 인사를 단행해 검찰 내 윤 당선인 사단을 대거 교체했다. 문재인 정부의 압도적 신임을 받으며 검찰총장이 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역적으로 몰리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단숨에 차기 대권 주자에 이름을 올렸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3월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걸 더는 지켜보기 어렵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6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한 달 뒤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그리고 4개월 만에 야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또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9일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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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기 2022-03-11 10:56:39
삼성전자 베트남법인 현지채용 한국인근로자에 갑질을 일삼고 개선 요청에 응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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