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63) - 효음(曉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63) - 효음(曉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2.02.2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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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남창에 기대어 푸른 산병풍을 바라보네 : 曉吟 / 설봉 강백년

현대에 들어서면서 야행성 문화가 우리 생활 주위를 여지없이 강타하고 있다. 새벽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즐기는 족속들이 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선현들은 밤이 어두움을 깔면서부터 일찍 자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책을 읽거나 시문을 읊었다. 그리고 시작에도 전념했다. 묻혀 사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아무 일이 없는데, 다만 남창에 기대어 푸른 산병풍을 바라보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曉吟(효음) / 설봉 강백년

가는 비가 보슬보슬 온 뜰을 적시우고

추위에 떠는 닭만 담장에서 우는데

사람만 잠이 깨어서 산 병풍을 바라보네.

小雨絲絲濕一庭 寒鷄獨傍短墻鳴

소우사사습일정 한계독방단장명

幽人睡起身無事 徒倚南窓望翠屛

유인수기신무사 도의남창망취병

다만 남창에 기대어 푸른 산병풍을 바라보네(曉吟)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는 비 보슬보슬 온 뜰을 포근히 적시는데 / 추위에 떤 닭만 낮은 담장 가에서 울어대네 // 묻혀 사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아무 일도 없는데 / 다만 남창에 기대어 푸른 산 병풍만을 바라보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새벽에 시를 읊다]로 번역된다. 새벽 공기는 더 없이 맑다.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으면 맑은 기운에 이해력이 최고조에 달한단다. 이른 새벽이면 시상도 잘 떠오르고, 대구 놓은 자리도 잘 보인다 하여 평상시의 시상 주머니인 시지詩紙에 대충 메모만 했다가 새벽에 시상을 주워 모으면 촘촘한 시가 일구어진다고 한다. 시인도 이런 생각과 착상에 따라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한 수 시를 읊었던 것이 아닌가 본다. 새벽부터 가는 비가 보슬보슬 온 뜰을 포근하게 적시었는데 추위에 떨고 있는 닭만이 낮은 담장 가에서 울고 있다는 선경先景의 시상 덩이를 쏟아냈다. 시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소리 없이 내리는 보슬비에, 담장가에서 울고 있는 닭이지만 후정後情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시상은 더욱 멋을 부린다. 화자는 전구에서는 움직이는 시상으로 얽히더니만 후구에서는 정적인 시심을 담아내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묻혀 사는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아무 일이 없어 보이는데 화자 자신은 다만 남창에 기대어 푸른 산 병풍을 바라보며 시를 읊는다는 시적인 얼게다. 동적인 상황과 정적인 상황의 조화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가는 비가 적시는데 장닭 만이 울어 대네, 사람들은 일이 없는데 푸른 산 병풍 바라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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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한계(閑溪), 청월헌(聽月軒) 등을 썼다. 1627년(인조 5) 정시문과에 급제하였고, 1646년 문과 중시에 장원하여 벼슬이 좌참찬,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던 인물이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한자와 어구】

小雨: 가는 비. 絲絲: 보슬보슬. 濕一庭: 온 뜰을 젖게하다. 寒鷄: 추위에 떠는 닭. 獨: 홀로. 傍短墻: 낮은 담장 가에서. 鳴: 울다. // 幽人: 묻혀있는 사람. 睡起: 잠을 깨어 일어나다. 身無事: 몸이 아무 일이 없다. 徒: 한갓. 倚南窓: 남쪽 창에 기대다. 望翠屛: 푸른 산 병풍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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