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길
당신의 길
  • 문틈 시인
  • 승인 2022.02.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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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으므로 그 길로 사람은 간다. 나는 한때 세계의 길들을 따라 가보고 싶은 꿈을 품어본 적이 있다. 세계의 모든 길들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 것일까. 너무나 매혹적인 꿈이었다.

길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연결에 그치지 않는다. 길은 인간의 희망과 미래와 꿈을 실어 나르고 또 그것을 은유한다. 길이 있으므로 인간은 서로 만나 사랑한다. 길은, 인간이 만든 인공물 가운데 신이 자연물로 받아들인 몇 안되는 물건이다.

신은 산, 들, 강, 바다, 호수를 만들었다. 그것들은 신의 창조물들이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것들 중에서 길은 신이 인공물 가운데 자연물로 받아들인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집, 다리, 빌딩, 항구 같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은 신과는 무관하다. 그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거나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길은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만든 인공물이지만 신이 거의 유일하게 받아들인 자연물이다. 그런 뜻에서 길은 성스럽기조차 하다. 만일 신이 지상에 내려온다면 ‘인간의 발자취 때문에 생겨난 길을 따라 오실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전에 길은 강과도 흡사한 것이었다. 강은 멀리서 보면 구불구불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막히면 돌아가고 경사지면 휘돌아간다. 길 또한 그렇다. 멀리서 보면 길은 마치 산과 언덕을 친친 휘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길은 신이 만든 자연물들과 다투지 않고 자연을 끌어안으며 간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성질이 급해서 막히면 뚫고 끊어지면 다리를 놓아 직선으로 길과 길을 잇는다.

세상의 모든 길은 ‘하늘의 천사들이 매일 밤 하늘로 끌어올려 깨끗이 닦아서 다시 이른 새벽에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라고 나는 쓴다. 세상의 모든 길들을 매일 밤 하늘로 들어 올려 천사들이 깨끗이 닦아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다시 그 자리에 내려놓는다고. 얼마나 길을 성스럽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성서에서 본 길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골고다 길이 인상 깊다. 길은 인간의 역사요. 증언이요, 삶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시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로 걸어왔다고 고백하면서 그 길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 달라졌다고 깊은 한숨을 쉬며 토로한다.

길은 한 사람이 가고, 두 사람이 가고, 열 사람, 천 사람이 오가면서 생겨난 자취가 바로 길이다. 인간은 그 길을 통해서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오는 것이다. 길은 과거, 현재, 미래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동경과 희망과 꿈이 오고간 수많은 길들. 그러므로 모든 길은 아름답다. 길 위에 지나간 발자국이 남겨지지 않는 것이 좀 섭섭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니다, 그 자취가 모여 바로 길이 된다.

길은 한자로 도(途), 도(道), 로(路) 쓴다. 풀이하면 도(途)는 수레 한 대가 지나는 길, 도(道)는 수레 두 대가 지나는 길, 로(路)는 수레 세 대가 지나는 폭의 길을 말한다. 즉, 길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일까. 달라야 한다는 것일까.

눈이 무릎까지 내린 겨울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 눈이 쌓인 마당을 치우며 저만치 떨어진 측간까지 마당을 이리저리 한 바뀌 빙 돌게끔 하여 길을 내었다. 하여 아버지, 어머니, 동생들이 측간을 가면서 “길을 이렇게 구불구불 내면 어떡해?”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미국의 국민시인 휘트먼은 ‘그대의 길은 나도 그외 또 어떠한 사람도 거닐 수가 없는 길/그대 자신이 거닐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라고 읊은 바 있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길이 있다. 쉬는 날 무등산을 오르는 길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길에는 저마다 혼이 담겨 있다.

이쯤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장날 난닝구를 사달라고 어머니의 뒤를 따라 가던 길, 마을과 마을의 고샅길을 지나가던 초등학교길, 해남을 지나 성전, 완도 군외면으로 가던 애타던 젊은 날의 길, 언젠가 길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얼마나 쓸쓸했던 것인가.

지금 나는 어느 길 위에 있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일이다. 공자, 석가, 예수님이 보여준 길을 따라 가는 수도자들은 그래서 경건하고 거룩해 보인다. 석가모니는 설했다. “여러분, 나는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발견했습니다. 그 길을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북에서 온 이산가족의 한 시인이 서울의 늙은 어머니를 만나 ‘꿈에 너무나 어머니를 자주 보러 다녀 서울로 오는 길이 다 닳아졌을 것’이라고 한 눈물어린 말이 가슴에 맺힌다. 내가 당신에게 가던 길도 그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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