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나무
구부러진 나무
  • 문틈 시인
  • 승인 2022.01.2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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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못 생긴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다. 곧게 자란 나무는 목재상으로 팔려나가고 구부러지고 못난 나무는 끝까지 살아 남아 선산을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는 뜻이다. 곧게 쭉 뻗은 나무가 아니어도 선산의 나무처럼 얼마든지 살아남는다. 자연계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는 최근에 다윈의 진화론이 주장하는 적자생존에서 좀 떨어져 있는 경우에도 얼마든지 생물들이 살아남는다는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야말로 선산 지키는 구부러진 나무나 같은 반가운 이야기가 아닌가. 자연계는 최적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훌륭해서 자손 번식을 할 수 있다면 대부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자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포용력이 넓다는 사실이 내게 안도감을 준다. 자연은 정글의 법칙이 난무해서 못나고 힘이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은 아주 잘못된 것이라니 반갑기도 하다.

특출나게 잘난 자가 아닌 그저 그런 보통인 자도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인간세상에도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싶다. S대, 강남, 고위공무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들 삶을 견딜 힘만 있으면 자손을 낳고 대를 이어 살아간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면 어떤 생물이 자연계에서 도태되는가. 못나고 굼뜨고 멍청이 같은 생물이라고 해서 자연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응하지 못하거나 운이 나쁜 생물이 도태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십만 년 전엔 지구상에 호모 사피엔스 외에도 우리와 똑 같이 불과 도구를 사용할 줄 하는 인간 속(屬)에 속하는 몇 종류의 ‘인간’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인간’들은 멸종하고 말았다. 인간속은 아니지만 같은 영장류에 속하는 고릴라도 살아남았는데 다른 인간속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왜? 이것은 자연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확실히 알지 못하는 ‘운’이 작용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계에도 인간 세상에서처럼 상당 부분이 운에 따라 죽고 살기가 결정된단다. 놀라운 통찰이다. 하기는 자연선택에 의해서만 생물들이 진화를 해왔다면 느릿느릿 움직이는 나부늘보 같은 동물은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것이다. 목이 긴 기린도 마찬가지다.

적자생존 이론에 못미치는 그보다 더 적은 상태로도 살아남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은 나름대로 자연이 출산한 생물들의 삶의 조건과 적응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관용과 포용이 넓은 듯하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어찌 보면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출나게 잘난 자만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개인에게 탁월성은 헛수고나 다름없다. 최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충분히 훌륭한 적정 수준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적합도가 떨어진다. 이들은 더 자주 실패하고, 실패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도 더 크다.” 특출한 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저그런 자도 적정 수준만 유지하면 살아남는다. 그러니 자연은 최적자보다는 중간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아마존 같은 정글의 세계에서는 ‘정글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정글 속에서는 1등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꼴등도 목숨을 부지하고 자손을 남긴다. 인간세계는 어떤가. 인간은 서로간의 유대로 짜여진 생존과 생식을 보장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을 잘 만들면 강자나 약자나 다 살아남는다. 적자생존이 아니어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관되게 적자생존이 아니어도 충분히 훌륭한, 운이 좋다면 살아남는다는 통찰을 보여준다. 오히려 자연은 최적의 특출함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것을 넓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가 내게는 크게 깊이 와 닿는다. 1등만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꼴찌도 수용한다는 것에서 자연의 비범함까지 느껴진다.

자연은 예쁜 것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그런 모습도 내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적자생존을 금과옥조로 삼고 생존경쟁에 내몰리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구부러진 나무가 살아남듯이 꼴찌도 훌륭히 살아남게 하는 국가정책이 아쉽다. 대선 후보들의 진짜 공약은 이 꼴찌를 살리는 정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못나고 뒤처진 사람들을 미래로 데리고 가서 국가의 지킴이로 만들 공약을 내놓을 후보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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