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파트 '와르르' 붕괴...‘또 인재(人災), 이게 광주냐’
광주 아파트 '와르르' 붕괴...‘또 인재(人災), 이게 광주냐’
  • 박병모 기자
  • 승인 2022.01.12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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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동 참사 또 다시 재연...예견된 ‘인재’
1995년도 삼풍백화점 사고 ‘판박이’ 비난
입주 시기 맞춘 ‘겨울철 공사 강행’ 지적
​​​​​​​인근 주민, 민원제기에 서구청 ‘소극적 대처’ 한몫

광주 학동 참사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11일 또다시 광주에서 발생한 고층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는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하늘에서 바라본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구조물 붕괴 현장

6명의 실종자에 대한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산업개발이 똑같이 시공한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역시 인재(人災)로 압축되고 있다.

무엇보다 오는 11월 입주시점에 맞춰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겨울철 콘크리트 양생기간 등 기본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강행한 게 결국 붕괴참사로 이어졌다.
화정동 아이파크 현장 관계자의 말대로 공기를 앞당기라는 시공사의 압박에 통상 1주일에서 10일 정도인 콘크리트 양생기간이 4∼5일 정도까지 짧아졌다는 증언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물론 정확한 사고원인은 앞으로의 현장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건설업계 및 전문가의 지적대로라면 무리한 공사 강행에 따른 인재라는 점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그 증거로 39층 아파트의 38층부터 23층까지 벽과 슬라브 일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점에 주목한다.
벽과 바닥이 철근부터 콘크리트까지 한 몸처럼 붙어 있기 때문에 벽 또는 슬라브 일부만 붕괴하는 일은 드문데도 연쇄 붕괴가 일어났다는 것은 중요한 하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주상복합아파트 붕괴현장 조사에 나선 소방관

국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철근을 세우고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붓는 전통적인 ‘철근콘크리트 공법(RC·Reinforced Concrete)’을 쓰기 때문에 설계부터 시공까지 단계별로 안전도를 높여놨음에도 이렇게 허술하게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볼 때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한 게 부실공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겨울철 공사는 콘크리트가 제대로 굳지 않고 얼어붙었는데도 공사를 이어갔을 개연성이 크다. 영상 5도 이상의 기온에서만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굳혀야 한다. 기온이 그 이하로 떨어질 경우 콘크리트가 굳지 않고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양생하는 층마다 난로를 떼는 식으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했다는 얘기다.

콘크리트 속성상 한번 얼면 푸석푸석해져서 강도가 떨어진다는 점에서다.
입주에 따른 공사 시기와 절차상 가을 입주가 건설사들에 치명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입주시기와 공사기간에 맞추기 위해 겨울철에 골조공사를 쫒기듯 했다는 얘기다.

둘째로 철근 설치(배근)도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최근 건설현장에서는 주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장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현장에서 설치만 하는 ‘철근 선조립’ 공법을 많이 쓴다.
물론 이번 사태의 경우 바닥과 벽체의 철근 이음새를 살펴보면서 강도와 함께 철근 직경이나 배근 상태 등을 다 조사해야 사고의 원인이 규명될 수 있다.

셋째로 콘크리트 재료 자체의 문제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겨울철에 시공하지 않은, 양생이 끝난 하부층까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크레인이 물건을 나르다 거푸집을 쳤다 해도 부딪힌 부분은 파손이 일어날 수 있어도 이번 사태처럼 십수개 층이 연쇄적으로 붕괴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니까 콘크리트 재료 강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1995년 붕괴한 삼풍백화점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삼풍백화점도 최상층인 5층이 붕괴되면서 충격하중을 받아 지하 5층까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지적에 HDC 현대산업개발 측은 “콘크리드 양생 기간을 충분히 했으며,공기가 지연돼 서둘러 공사했다는 일부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광주 서구 아파트 붕괴로 쏟아진 잔해물이 바닥에 널려있다

마지막으로 사고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인근 주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안전불감증’도 한몫했으며, 이게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은 2년 전부터 크고 작은 전조현상이 나타나 위험에 노출됐다는 민원을 수백건 제기했다는 것이다.

화정동 현대 아이파크 공사가 시작된 2019년 5월부터 올 1월까지 붕괴사고가 발생한 2블럭과 관련해 접수된 기후환경 관련 민원만 324건에 달했다.
대부분이 ▲비산 먼지 날림 ▲공사 소음 ▲작업 시간 미준수 등의 민원이었다.

인근의 한 상인은 "1년 전 공사 시작 후 지반침하로 땅에 금이 가 서구청에 민원을 수차례 넣었는데 바뀐 건 없었다. 예견된 사고다"고 강조했다.

서구청은 이와관련, 접수된 민원 가운데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18차례 행정처분을 내렸다. 14건에 대해 2천26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고 4건에 대해서는 개선명령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관할 서구청은 상층부 합판이 떨어지거나 주변 상가에 균열이 생기는 등 안전사고와 관련한 민원 수백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안일한 행정이 결국 대형 안전사고를 불렀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아이파크 붕괴사고도 학동 참사 처럼 ‘인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지난해 6월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은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5층 건물 붕괴사고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 역시 인재로 판명됐다.
경찰 수사 결과 건물 해체 과정에서 수평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공사가 붕괴 원인이 됐고,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로 드러났다.

광주 학동참사 시민대책위는 이날 "이번 사고 역시 안전은 도외시한 채 이윤만을 좇아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무리한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사고는 본질적으로 학동참사가 되풀이된 것이라 규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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