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54) - 황룡강조우(黃龍江遭雨)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54) - 황룡강조우(黃龍江遭雨)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12.20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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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앞에 가는 하인들 연잎고깔 다 쓰고 있네 : 黃龍江遭雨 / 수은 강항

말끔하던 날씨가 찌뿌둥하더니 먹구름을 동반하면서 소나기를 몰고 오는 수가 많다. 영락없이 물씬하게 몽땅 비를 맞는다. 처마 밑과 같은 의지처가 있었다면 잠시 장대비를 피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난처할 때가 많았다. 그것도 강가에서 비를 만났었다면 더 할 말은 없어진다. 먹구름을 몰고 오더니만 이어진 강물의 소나기에 잔물결은 일고, 가는 베옷에 젖어드는 빗물인데 유월에도 춥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黃龍江遭雨(황룡강조우) / 수은 강항

이어지는 강물에 소나기 물결 일고

베옷에 젖는 빗물 유월에도 추운데

행장에 볼만한 일 많아 연잎 고깔 쓴다오.

連江驟雨動輕瀾 細葛初霑六月寒

연강취우동경란 세갈초점육월한

倦客行裝多勝事 馬前僮僕盡荷冠

권객행장다승사 마전동복진하관

말 앞에 가는 하인들 연잎고깔 다 쓰고 있네(黃龍江遭雨)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수은(睡隱) 강항(姜沆:1567∼161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어지는 강물의 소나기에 잔물결은 일고 / 가는 베옷에 젖어드는 빗물인데 유월에도 춥구나 // 피곤한 나그네의 행장에도 볼 만한 일이 많나니 / 말 앞에 가는 하인들 연잎고깔 다 쓰고 있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황룡강에서 비를 만났더니]로 번역된다. 준비 없이 떠난 여정인데 갑자기 비가 내려 의지할 곳 없이 비를 맞는 수가 있다. 흠뻑 적신 망건이며 옷가지를 어찌 할 수 없는 딱한 처지다. 가던 길을 그대로 재촉하기엔 딱한 신세에 비 맞은 장닭의 신세인데, 인가를 찾아 옷이라도 말려 떠나자니 점잖은 체면에 그럴 수 없는 딱한 처지다. 먼 여정에 어쩔 수 없이 놓이게 되는 시인의 딱한 입장을 아무도 대변해 주지 못한다. 이어져 불어나는 강물에 소나기까지 내려 잔물결은 일고, 가는 베옷에 젖어 빗물을 받아 유월인데도 추위가 엄습해왔다는 상황적인 처지를 시적 구성으로 일구어 놓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딱한 처지다. 이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화자는 불편한 심기를 시적인 전환으로 시도하지 않고는 이 순간을 피해 나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피곤한 나그네의 행장에는 볼 만한 일이 많은데 뜬금없이 비까지 내렸지만, 말고삐 잡고 가는 하인의 모습을 보니 연잎 고깔 써서 비를 피했다는 대비법의 한 줌 시상을 놓았다. 시상은 이렇게 대비법을 놓아야 된다는 모범을 보인 작품이라고 하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소나기에 강 물결 일고 베옷 젖은 유월이네, 나그네 행장 볼일도 많고 하인들은 고깔 쓰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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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수은(睡隱) 강항(姜沆:1567∼1618)으로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의병장이다. 임진왜란 중에 포로가 되었던 그는 1600년 풀려나 가족들과 고국에 돌아왔다. 1602년 대구교수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사임하였고 1608년 순천교수에 임명되었으나 이 또한 취임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한자와 어구】

連江: 이어지는 강물. 驟雨: 소나기. 動: 움직이다. 일다. 輕瀾: 잔물결. 細葛: 가는 옷 베. 初霑: 처음으로 젖다. 六月寒: 유월에도 춥다. // 倦客: 피곤한 나그네. 行裝: 행장. 多勝事: 볼 일이 많다. 馬前: 말 앞. 僮僕: 하인. 말을 끄는 하인을 뜻함. 盡: 모두. 荷冠: 연잎 고깔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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