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 위인전(傳)
외할아버지 위인전(傳)
  • 문틈 시인
  • 승인 2021.12.0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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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정갈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이었다. 시집간 딸네 집에 오시면 새벽에 대나무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가 들렸다. 외할아버지가 쓸어 놓은 마당은 빗자루로 쓴 태죽이 선명했다. 겨울눈이 올 때도 외할아버지는 새벽에 마당에 나가 눈을 쓸어 놓았다.

외할아버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잠결에 듣는 싸아악, 싸악, 새벽 마당 쓰는 소리다. 외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른 분이었던 것 같다. 늘 흠결 없는 단정한 분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신이 신고 다니는 흰 고무신은 늘 방금 씻은 듯 깨끗했고, 바지 대님은 항상 흐트러짐 없이 단정히 매고 다녔다. 옷차림 몸가짐 어느 것 하나 반듯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당신이 열여섯 살 되던 해 외할아버지는 외갓집 마당 한켠에 오동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보통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는 뜻은 나중에 딸이 시집갈 때 장롱을 만들어주려고 하는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그런 뜻으로 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나중에 늙어 돌아가실 때 널로 쓰려고 그랬다. 세상에나, 이제 겨우 열여섯 살 나이에 먼 훗날 늙어 죽을 때의 일을 생각하다니.… 한 평생의 시작과 끝을 한목에 생각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세월이 흘러 70세가 넘자 외할아버지는 오동나무를 베어 당신이 들어갈 관을 손수 짰다. 나무를 쪼개 판자를 만들고, 대패질을 하고, 먹줄을 튕겨 크기를 맞추고, 마치 공예 가구처럼 널을 만들고 나서 뒷산 옻나무를 베어와 옻을 내서 윤이 나게 칠했다. 널은 번쩍이는 고급가구처럼 만들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외할아버지는 이따금 널 안에 들어가 누워보기도 하며 죽음을 가체험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널 속에 집안의 생활용품들을 넣어두었다. 외할아버지는 당신이 돌아가실 때 친지들에게 보낼 부고도 미리 다 써서 널 안에 보관했다. 그토록 당신의 삶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외할아버지는 평생 장돌뱅이 장사로 무안장, 현경장, 함평장을 돌며 살림을 꾸리셨고, 무엇보다 고깔 춤을 잘 추셔서 여러 고을에서 초청을 받아 요샛말로 초청공연을 하러 다졌다. 고깔 춤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내가 열 살이 넘었을 적에 딱 한번 외할아버지가 추는 고깔 춤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벅구를 치면서 상모를 휘돌리며 공중에 날듯이 여러 번 맴도는 솜씨는 구경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누가 어린 내게 말했다. “네 외할아버지는 고깔 춤 대가란다. 무안 일대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 아마 지금으로 치면 인간문화재급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한다.

외할아버지는 동네의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외면하지 않았다. 남몰래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장사를 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고, 그 약간의 여유를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외할아버지는 딸이 시집갈 때 혼숫감으로 싱거 재봉틀을 사주었다. 내 어머니인 외할아버지의 딸은 외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기술로 평생 그 재봉틀을 돌려 논을 사고 밭을 사고 자식들을 키웠다.

무엇보다 외할아버지는 인간의 도리와 책임을 목숨처럼 지켰다. 내가 나이 들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알게 된 이런 사실들에 나는 마음속으로 늘 경의와 존경을 품게 되었다. 일생을 통해서 내게 외할아버지만큼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없다고 나는 감히 토로한다.

세월은 계속 흘러서 외할아버지는 80이 가까워졌다. 그때까지도 외할아버지는 드물게나마 딸네 집을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준비를 했다. “죽은 사람 옷이라고 대충 짓지 말고 바느질을 꼼꼼히 잘 박아서 지어다오.” 수의를 미리 짓게 하면서 당부한 말씀이다. 외할아버지는 일평생 어디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손주, 증손주들을 많이 보아 행복하게 지냈으며, 이웃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항상 남의 곤란을 도왔다.

외할아버지는 어느 날 돌아가실 때를 알아차리고는 아침 일찍 몸을 씻은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부자리에 누워서 죽음을 기다렸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임종을 지켰다. 외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이 임박하자 온 힘을 다 해 최후로 힘을 모았다. 돌아가실 때 새 팬티에 변이 묻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괄약근을 조이시느라고 애를 썼다. 당신이 숨을 거둔 후 속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외할아버지는 일생일대의 치욕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누가 담소 중에 나폴레옹 이야기를 하면 나는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인간 한 사람이 일생을 얼마나 반듯하게 살아낼 수 있는가, 죽은 뒤에는 얼마나 깨끗한 태죽을 남길 수 있는가. 내가 외할아버지를 위인 중의 위인으로 숭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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