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태움’문화로 새내기 간호사가 희생되고 있다니...
아직도 ‘태움’문화로 새내기 간호사가 희생되고 있다니...
  • 주종광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21.11.26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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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광 객원논설위원(법학박사,공학박사)
주종광 객원논설위원
(법학박사,공학박사)

주로 대형 병원 선배간호사가 신임간호사의 규율을 잡을 때 쓰는 일종의 속어가 있다.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태움’을 말한다.
지난 11월 16일이다.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입사 7개월차 신임간호사가 ‘태움’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대로라면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다. 부족한 인력에 따른 과중한 업무와 그것도 모자라 태움으로 인해 해당 간호사는 갈 곳을 잃고 막다른 길을 택했다는 얘기다.

이를 지켜보면서 과거 90년대 원양어선에 승선한 선원들이 오버랩 된다. 
당시 선원들은 군생활 보다 엄격한 군기, 혹독한 노동환경, 열악한 복지, 거친 욕설, 폭력, 인격모독 등 일반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다양한 국적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 선원들은 대개 항해사나 기관사와 같은 사관이거나 갑판장이나 조기장, 냉동사, 전기사 등 주로 준사관급의 간부선원이 대부분이었다. 힘든 작업은 이들 갑판원이나 조기원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만선의 부푼 꿈이 있었다. 힘든 노동으로 번 돈으로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 시기 선장은 원양어선에서 만큼은 거의 제왕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관들도 힘든데 일반 부원들은 오죽했을까 싶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정신을 바짝차리지 않으면 어구에 사람 몸이 딸려 나가 사망사고로 이어지기 일쑤였고, 그게 바로 원양어선 작업 환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이를 통제하고 정신 바짝 차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군기가 쎌 수밖에 없었다.
소위 말하는 '군기'를 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폭력이 동원되기 십상이다.
선원들의 경우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에서 숨을 곳도 피난처도 없었다.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노동현장이기도 했다.

그래도 여기는 90년대 원양어선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K-방역과 의료선진국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대형병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신규 간호사들에 대한 ‘태움’을 언제까지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국립대병원에 입사한 간호사의 태반(太半)은 입사 5년이내에 퇴사한다고 하니 국립대병원에서 발생하는 ‘태움’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대목이다.
이런 사회적 병폐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열악한 노동환경이 존재함을 담박에 알 수 있다. 왕왕 음성적으로 나도는 ‘태움’ 문화는 국립병원 등 대형병원에도 깊숙히 자리잡으면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민석의원과 서정숙의원이 대표 발의한 「간호법안」은 대체로 현행 의료법체계에서는 간호사의 역할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간호사 인력과 관련한 사항을 규정한 독자적인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대해 의사단체 등 10여개 보건의료단체가 반대하고 있다. 반대이유도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간호사들이 처해진 현실과 비교해 봤을때 과연 마냥 반대만 하기에는 논리가 부족한 듯 싶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등 세계 대다수 국가와 같이 의료법과 별도로 간호사 등 인력에 관한 총괄적인 법률을 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의원 대표발의 「간호법안」의 제안이유가 눈에 밟힌 것도 그래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법사회학적 인식 차원에서 ‘특정집단에게 유리한 법안은 성공하기 쉽고, 만인에게 유리한 법안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인데, 이 인식이 이번 경우에는 틀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종래 군대식 표현인 군기는 일견 긴장을 놓치면 자치 사고로 이어지거나 목숨을 잃기 쉬운 살벌한 현장에서 흔하게 행해지는 규율잡는 문화다.
예컨대 원양어선의 경우 참치잡는 주낙에 옷이 끼어 바다로 끌려가거나 투망하는 그물을 밟고 있다가 바다로 끌려들어가서 생명을 잃게 되는 사고가 숱하게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이와 같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법이 쉽게 사용되곤 했던 것 같다.
그런 쌍팔년도 때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이어 내려오고 있고 아직도 간호사 세계에서 ‘태움’같은 규율문화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꽃다운 새내기 신임간호사들이 죽어나간다고 하니 전라도 말로 '얼 척'이 없기도 하다.
가슴이 아려오기 까지 한다.
​​​​​​​그만큼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감독당국의 세심한 관심을 촉구한다.

앞으로 젊은 간호사들이 분노하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필자를 포함해서 전국민은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간호사의 처우가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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