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남자
벽 속의 남자
  • 문틈 시인
  • 승인 2021.11.2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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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벽 속에 갇혀 있다. 이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거의 사실이다. 코로나 때문에 바깥 출입이 자유스럽지 않아서 시멘트 상자 같은 아파트에 은둔해 있다시피 지낸다. 벽 속의 남자라고 칭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드물게 산책을 하기 위해 집을 나갈 때도 있지만 그것은 마치 죄수들에게 가끔씩 햇볕을 쬐며 스트레칭하라고 잠깐 교도소 내 운동장으로 나가게 하는 것에 진배없다.

어제는 전에 다니던 직장의 대선배가 한 번 만나서 식사나 같이 하자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못나간다고 양해를 구했다. 했더니 선배가 하는 말, ‘무어 그런 것 때문에 웅크리고 있는가, 코로나에 걸려 죽으면 죽는 거지’ 했다.

나는 그런 배짱이 없다. 나처럼 기저병이 있는 사람은 코로나에 걸리면 즉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약을 타러 병원에 가야 하는 날엔 마스크를 두 개나 덮어쓰고 안경까지 걸치고 간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다. 흡사 코로나 공포에 사지가 얼어붙어 있는 모양새다.

시멘트 벽에 갇혀 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 내게 있는 것이라곤 시간인지라 전에 못 읽었던 책들을 펼친다. 지난 며칠 동안 8백 페이지가 넘는 평전을 읽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다 읽으려면 나는 1백세가 넘게 살아야 할 것이다.

시골 학교에 몽땅 보내고, 고향 문화시설에 기증하고, 그리고 남은 책들이 아직도 작은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다. 저 책들을 다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초조하다. 그래서 요리를 하기도 한다. 레시피가 있는 것이 아니고 유튜브를 보면서 간단한 국 끓이기, 두부 요리 같은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팔을 걷어부치고 당근, 파, 호박, 양파 등속을 채를 썰어 후라이판에 데쳐서 인스턴트 짜장면 만들기에 도전할 때도 있다. 그러나 맛은 젬병이다. 손맛이 없는데 맛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내 입에는 먹을 만하다. 난 워낙 맛보다는 질에 관심이 있으므로 야채를 많이 먹는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썩 좋지 않다. 솔직히 나는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도 모른다.

벽 속의 남자는 음악을 듣는다. 하지만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음반 위에 바늘을 놓고, 음반을 뒤집어 올려놓고, 이런 절차가 귀찮아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소장하고 있는 음반도 꽤 된다. 저것도 다 들어 보려면 엄청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음반은 직장에 다니던 시절 사 모아두었던 것들이다. 주로 클래식 음반이다. 그때는 무슨 열정으로 그렇게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 모았는지 하는 후회가 된다. 음악은 아이팟을 기기에 연결해 듣는다. 1천곡이나 아이팟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꽝꽝 크게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충간 소음이 신경 쓰여서다. 음악을 듣는 시간은 속세에서 열락의 경지로 순간이동을 하는 느낌이다. 베토벤, 모짜르트가 죽어 천국에 가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영혼을 감싸주는 불멸의 곡을 작곡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천국에 있지 않다면 대체 거기에 누가 가 있을 것인가. 음악을 듣는 시간은 영혼의 시간이다.

뭐니 해도 아파트에 갇혀 사는 내게 가장 즐거운 때는 목욕하는 시간이다. 이틀에 한번 욕조에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온몸을 물에 담그고 있으면 몸이 녹작지근하게 풀어지는 듯한 행복감에 빠져든다. 이것도 욕조에 들어가기까지가 문제다.

욕조에 더운 물을 채우고, 옷을 벗고, 끝나고 나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하는 절차가 귀찮다. 그래도 목욕을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정한 기분이 들어 좋다.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그 결과는 만족이다.

벽 속의 남자는 이런 소소한 일 말고도 또 다른 소소한 일들을 해야 한다. 밥, 빨래, 청소다. 이것은 진짜로 성가신 일들이다. 그래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중 청소는 벽 속의 남자가 가장 성가셔 하는 일이다.

대걸레에 물휴지를 물려 거실, 방 바닥을 닦노라면 먼지가 새까맣게 묻어 나온다. 나는 질겁을 한다. 이 검댕이들은 어디서 날아 온 것일까.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네 집도 걸레질을 하면 먼지가 묻어나온다고 한다. 이 나라 어디든 먼지 구덩이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벽 속의 남자는 견고한 시멘트 벽에 갇혀 산다. 아파트를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바라보면 같은 구조의 침실, 부엌, 거실이 같은 방향으로 있다. 그렇게 직선으로 서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다니.

이건 말이 좋아 아파트지 벌집과 다를 바 없다. 공중에 떠 있는 아스라한 높이에서 사람들이 벌떼처럼 잉잉거리며 살고 있다. 나는 공중의 벽에 갇혀 있는 벌 한 마리 신세다. 그렇고 보니 벌들이 수억원이나 하는 아파트에 갇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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